내 지역: 지도에서 선택2026년 10월 30일 금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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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목포시의회 발언

이형완 의원 발언

제408회 제2차 본회의2026-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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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완

이형완의장

성원이 되었으므로, 제408회 목포시의회 2026년도 제1차 정례회 제2차 본회의를 개의하겠습니다. 1. 시정 전반에 대한 질문 및 답변의 건
의사일정 제1항 “시정 전반에 대한 질문 및 답변의 건”을 상정합니다. 오늘 시정에 대한 질문을 하실 분은 손혜원 의원님, 최현주 의원님 이상 두 분입니다. 그럼, 시정질문에 앞서 진행방법에 대하여 간단히 설명드리겠습니다. 질문순서에 따라 의원님께서 발언대에 나오셔서 질문하여 주시고, 시장 또는 관계 공무원께서는 답변 발언대에 나오셔서 답변해 주시기 바랍니다. 아울러, 의원의 질문시간은 답변을 포함하여 50분 이내인 점을 감안하여 집행부에서는 간단명료하면서도 책임있는 자세로 답변해 주시기를 당부드립니다. 의원 여러분께서는 목포시의회 회의규칙을 준수하시어 원만하고 효율적인 회의진행이 될 수 있도록 협조 부탁드립니다. 그러면, 손혜원 의원님께서는 발언대로 나오셔서 질문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O 손혜원 의원

손혜원의원

안녕하십니까? 저는 목포 원도심의 시의원 손혜원입니다. 오늘 시정 질의에 관련되는 내용은 제가 목포시의 시의원으로 출마를 하면서 약속을 드렸던 원도심 살리기에 일환으로서, 그동안 제가 한 6년 정도를 목포를 지켜보면서 목포의 가치 그리고 하루라도 빨리 이 가치를 관광 자원으로 만들어서 이 시민들한테 내놓을 수 있는 그리고 전국의 관광객들을 불러들일 수 있는 그 가치를 기준으로 봤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빨리 우리가 이 상품을 만들 수 있는 이제 그런 기준으로 오늘 시정 질의를 하게 되었습니다. 우리 속담에 자기 발 밑에 있는 산삼을 알아보지 못하며 남의 밭에 도라지를 부러워한다는 그런 속담이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오늘 만나는 이 질의의 내용은 여러분들 그리고 제 발밑에 있는, 그리고 그것도 100년도 아니고, 200년도 아니고 그야말로 사 오백년 전부터 이미 준비되어 있던 그 가치 그리고 그다음에 지금까지 일제강점기 그리고 조선시대 그리고 최근에 들어서까지도 우리가 우리만 알아보지 못했지 이 보물은 그대로 그 자리에 서 있었다라는 것, 이것을 오늘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오늘은 시장님께 제가 말씀드리는 이 내용을 어떻게 하면 하루라도 빨리 관광 상품으로 만들 수 있는가에 대한 질의를 할 것입니다. 제가 오늘 드리는 말씀은 이 시작의 헤드라인을 유달산은 통째로 응회암의 돌산이었다라는 것부터 시작을 합니다. 이미 시에서 한 번 제가 강의를 했기 때문에 시에서 오신 분들은 응회암이라는 이 세 글자를 충분히 아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아마 여기 계신 분들도 듣기는 들었는데 자세한 것은 모르는, 그런 상황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응회암은 화산암의 일종이기는 하지만 화산암하고는 좀 다릅니다. 화산암은 용암이 흘러서 식은, 굳은 돌을 대표하고 있지만 응회암은 재가 날아가서 굳은 것입니다. 그래서 화산암은 마그마나 용암이 분출되는 그 지역에 있어요. 그러나 응회암은 화산이 분출된 그 분화구에서 떨어진 곳에도 엉뚱하게 조성이 돼 있는 경우들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지금 유달산에 있고, 산정동 산에서 우리가 보고 그리고 여기 있는 모든 건물들과 그리고 유물들 이 모든 것들은 다, 모두 다 목포는 응회암입니다. 저도 정말 놀랐던 것이 이제 이 강의를 준비하고, 또 여러 번 이 강의를 하면서 응회암이라는 것이 흔할 텐데, 목포에는 이렇게 모두가 다 응회암인데, 발만 파면 나오는데 왜 다른 데서는 응회암이 없지, 없어요. 그리고 응회암이 있는 곳들도 실제로 우리 같이 파서 쓸 수 있는 게 아니라 계곡 같은데 그냥 흘러서 바닥에 깔려 있더라는 거죠. 그래서 목포가 얼마나 특별한 응회암의 산지인지 그리고 얼마나 축복받은 이 땅인지를 제가 정말 오늘 이 짧은 시간 안에 다 보여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화산재가 굳어서 만든 돌을 응회암이라고 하는데요. 응회암은 왜 이것이 조선시대부터 그리고 일제강점기나 그리고 우리 목포 원도심에서 이렇게 쉽게 응회암 건물들이 생겼는가를 검토를 해보면, 가공이 쉬워요. 화강석에 준하는 정도의 강도를 갖고 있고, 건축 자재로서 그만한 장점들을 다 갖고 있지만 근데 그 대신 화강석처럼 빛이 나거나 하는 부분들은 좀 적고 이것은 아무래도 화산재가 굳어졌기 때문에 그 가루가 마치 시멘트같이 가루로 이루어져 있어요. 처음에 저는 시멘트 돌인 줄 알았어요. 목포 처음 왔을 때는. 근데 아니다, 이런 얘기를 들었고 이제는 확신을 갖고 이 응회암이 갖고 있는 장점과 그리고 앞으로 정말 충분한 가능성을 볼 수 있겠다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그런데 뭐니 뭐니 제일 쉬운 것은 첫째, 흔하다는 거죠. 산에 올라가도 있고 땅만 파면 있어요. 유달산은 온통 이 전체가 다 응회암이고, 게다가 두 번째는 이것이 아까 말씀드린 대로 쉽게 가공이 된다는 것, 이것 때문에 저는 응회암이 조선시대부터 쉽게 만들어진 게 아닌가라는 생각을 합니다. 왜냐하면 역사를 제가 이 목포권에 있는 지금 이것이 조선시대부터 있었던 그리고 아주 가까이 최근에 여러분들 담장 안에도 응회암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응회암도 그냥 파내는 응회암이 아니라, 언제 누군가가 그 돌담을 쌓았다는 거죠. 그리고 축대가 우리 집 근처에 너무들 많이 있어요. 지금 우리가 보는데, 원도심에 오시면 그걸 보여드리는데 제가 생각하는 가장 오래된 순서로 이 목포권에 어떤 응회암 자원들이 있는지를 보여드리겠습니다. 자원이라는 것은 돌이 밑에 깔려 있다는 게 아니라 이것을 꺼내서 뭔가가 만들어지고 그리고 그 자연유산으로서도 이게 남아 있다는 것이죠. 여러분들 노적봉이 응회암이라는 사실을 알아서 아셨습니까? 이거는 연대 측정 불가입니다. 언젠지 몰라요. 이순신 장군이 여기를 활용했다라는 얘기는 있지만 이게 언제부터 유달산에 이런 돌이 세워져 있었다는 걸 모르는데, 이 자체가 훼손되지 않은 하나도 파내지 않은이거는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그냥 바위 특이하게 생긴 바위 덩어리입니다. 두 번째는 더 특이하게 생긴 자연유산 국보입니다. 두 번째는. 갓바위가 응회암이에요. 00:16:53* 이것이 이렇게 묘한 형상을 이루면서 이렇게 긴 세월을 흘러 내려왔다는 것은 이것 또한 화강암보다는 약간 물을 먹습니다. 얘가, 근데 물로 인해서 이게 흐트러지거나 하진 않아요. 그런데 물을 살짝 머금는 그런 특성을 갖고 있어요. 그래서 응유함의 특징이라고 본다면 이끼가 잘 껴요. 물기가 있으니까, 그렇죠. 그래서 그런 이 바닷가에서 이 파도를 만나면서 오랜 세월 동안 이렇게 이런 형상이 만들어진 이것이 바로 또 응회암입니다. 그리고 갓바위가 국보인가요? 자연유산으로? 맞을 거예요. 아마. 그래서 문화재청에서 자기들이 자연유산으로 보는 거는 이 갓바위를 얘기하시더라고요. 그리고 이곳은 여러분들이 누군가 한번 가보셨을 수 있는데 이것은 운주사 꼭대기에 있는, 이걸 보통 우리가 와불이라고 부르거든요. 누워 있는 불상이다. 이것은 여기서부터는 사람의 손길이 가해진 겁니다. 근데 처음에 제가 여기 갔을 때는 뭔가 스토리가 있었나, 왜 이렇게 와불을 여기다가 이렇게 했나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이것은 그냥 바위였던 거예요. 너럭바위에다가 앉아서 조각을 하니 얼마나 쉽습니까, 들고 다니지 않아도 되고. 그래서 이 운주사의 와불은 응회암에서의 가장 특징적인 그런 불상이라고 볼 수 있고요. 그리고 운주사에 있는 그 모든 조각 같은 거를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사람들이 단순하게 했다고 보이는 그 부처들 있잖아요. 모두가 다 응회암입니다. 그리고 저는 1439년으로 기록되는 목포 지인이 조성됐다는 이 연대 제가 일부러 이쪽 화면들을 다 켠 이유가 굉장히 상세하게 보입니다. 여기 보시면요…. 여기 보시면 거뭇거뭇하고 불긋불긋한 거 있죠, 그것은 그 옛날 그 당시의 응회암입니다. 그 돌을 그대로 쓰면서 똑같이 만들어서 다시 수리를 한 거예요. 일본에 가면은 백제시대에 승려가 가서 만들었던 7세기에 조성한 절이 있습니다. 원흥사라는 곳인데 거기를 아스카 쪽에 있던 것을 옮기면서 창고에서 수백 장의 백제의 기록이 남아 있는 기와가 나와요. 그래서 그 원흥사는 기와가 얼룩덜룩 이렇게 만들어져 있어요. 그러니까 이 사람들이 7세기 기와, 9세기, 10세기, 11세기를 전부 다 기록을 하면서 이 지붕이 어떻게 기와가 바뀌어 왔는지를 보여주고 있는데, 제가 보기에는 지금 축제를 조성을 하면서 저는 굉장히 잘했다고 생각하는 게 처음에 만들어졌던 것들을 함께 섞어서 중간에 원흥사 같이 해놨다라는 걸 보고 사실 살짝 감동을 했습니다. 여기 보세요, 그러니까 이 사람들이 자기들이 그 밑에, 옆에 굴러다니던 너무 많은 이런 그 당시에 돌이 있었던 거죠. 이순신 시대에 그 돌을 섞어 놓죠. 그리고 아까 말씀드렸듯이 응회암이 물을 좀 먹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세월이 지나면 색깔이 붉어지거나 약간 바뀌어서 오래된 돌은 이렇게 돼요. 그리고 이제 물을 많이 먹은 자리에 있었을 땐 더 그렇게 되고요. 그런데 이제 놀라운 걸 또 제가 이번에 이 연구를 하면서 발견을 했습니다. 지금 이거는 무안에서 하나가 나왔고, 영암에서 하나가 나왔고, 그다음에 해남에서 하나가 나왔어요. 사당을 지을 때 참 놀라운 게 우리가 보통 이렇게 초석을 밑에 이렇게 만들어 놓고 모든 건물은 위에다가 나무를 이렇게 올려서 기둥을 만들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 세 도시에 있는 이 사당들은 장초석이라고 그래서 밑에 초석 위에 이만큼 긴 응회암을 깎아서 거기다 놔요. 이것은 참 우리나라 사람들의 지혜라고 생각합니다. 화강암같이 그렇게 깎기가 어렵지가 않기 때문에 동네에서 굴러다니는 이 돌들을 갖고 장초석을 만들었는데 한 군데만 나온 게 아니라 세 곳에서 이게 다 나왔다는 겁니다. 그리고 보면은요. 이 장초석을 보면 어떤 데는 조금 더 많이 올라와 있고 어떤 쪽은 조금 낮아요. 높이도 똑같지 않아요. 한국 사람들은 규격화하는 거 아주 싫어해요. 자기가 그 장인들이 자기들이 그날의 컨디션에 따라서 그리고 이 환경에 따라서 이 치수를 자기들이 그때그때 정합니다. 굉장히 유명한 일화가 있어요. 우리나라 사방탁자가 너무 아름다워서 일본 사람들이 이것을 규격화해서 상품으로 만들려고 이것을 갖고 갔어요. 그래서 자기들이 이걸 분석을 해갖고 사방탁자 몇 개를 전부 다 분석을 했더니 똑같은 게 하나도 없더라는 겁니다. 동시대에 같은 사람이 만들었는데도 이게 어쩌다 치수가 5미리가 밀리고 한 게 아니라 다르더라는 거예요.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서 정해놓지 않고 자기들이 하더라 장초석이 딱 그렇습니다. 심지어는요, 여기서 보이는 것 중에 또 하나가 있는데 이것은 앞 뒤 좀 보세요. 뒤는 낮고 앞에가 높아요. 이것은 해남 명량대첩비에 있는 건데 이 사람들이 나중에 이것을 수리할 때도 제가 보기에는 이 장초석을 그대로 쓴 것 같아요. 할 때도. 그런데 저기 뒤에 보면 저건 2개는 낮고 이건 높아요. 왜 그랬을까요? 제가 혼자 생각을 해봤는데, 어떤 거는 둥글게 했고 이런 데 또 각이 져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저 뒤가 명량대첩비가 보이는데 그 돌이 방해가 될 것 같아서 그런 것 같아요. 아마 거의 맞을 거예요. 제 생각이. 저 뒤에 장초석이 올라가면 이 옆에서 볼 때 저 비가 잘 안 보이잖아요. 그러니까 튼튼하게 하려면 이 장초석을 써야 되는데, 그래서 밑에 그 난간만큼만 밑에는 줄였다라는 그런 생각을 해봤습니다. 이것이 조선시대 건데 이 시기로 봐서 1688년, 그리고 그 전으로도 가요. 그래서 아까 우리가 목포진 보다 이것을…. 이 시기가 조금씩 달라요. 그래서 이건 제가 아마 역사학자들한테 맡겨 가지고 분석을 해보라고 그렇게 하겠습니다. 여기 또 나옵니다. 영암 담숙재, 여기는 이제 입구죠. 그렇죠. 그래서 이것도 가서 나중에 한번 제가 실측을 해보려고 그러는데 앞에게 두 개가 조금 높고 옆에 두 개가 조금 낮아요. 이래서 보면 제가 지금 무슨 말씀을 드리려고 하는 거냐 하면 응회암의 역사가 일제강점기에서 시작한 게 아니라는 걸 보여드리는 거예요. 물론 노적봉이나 갓바위는 인간이 만든 게 아니잖아요. 그러나 장초석에서 우리가 보면, 그리고 우리가 와불에서 보면 응회암을 깎아서 뭔가를 만들었던 것은 훨씬 더 이전으로 간다는 거죠. 그러니까 그 목포 사람들이나 목포권에 있는 사람들은 이것이 익숙한 돌인데 일본 사람들은 들어와서 깜짝 놀란 거죠. 그것도 이유를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이 영사관이 1900년에 지었더라고요. 그러니까 일본하고 교류가 굉장히 본격적으로 시작될 때인데, 이때 이걸 지었을 때 설계나 이런 걸 해놓은 걸 보면 일본 사람들이 관여를 많이 한 것 같다는 느낌이 듭니다. 그런데 이때 여러분들 잘 아시겠지만 원도심에 있는 그 굴뚝이나 그 조적으로 만든 것들은 굉장히 잘 만들었어요. 그리고 그 돌이 일본 사람들이 쓰는 방식으로 이것이 쌓여져 있거든요. 제가 지금 이 전시장을 준비하는 데에도 굴뚝이 하나 있는데 굴뚝이 딱 그런 형식이에요. 사람들이 보면 다 일본 사람들이 이것은 만들었다라고 하는데 여기도 마찬가지로 일본 사람들이 자기들 방법으로 저 조적으로 하는데, 여러분들 언제 한번 유달산 가시면 이제 다 유심히 안 보이실 거예요. 이 영사관이 1900년에 만들어질 때 유달산은 이렇게 산이었고 이건 섬이었어요. 섬이 아니라 육지에 붙어 있는 산이었는데, 바로 앞에가 물이었다는 얘기죠. 물이었는데 여기를 자기네가 영사관을 만드는데, 그럼 이걸 산이 이렇게 있던 걸 팠을 거 아닙니까, 아마 유달산을 처음으로 팠을 것 같아요. 파야지 만들잖아요. 이거는 파서 그 안에다 넣어놨거든, 유달산 중턱에. 팠더니 그 속에서 유달산에서 응회암 덩어리가 나온 거야. 팠더니 다 돌이더라는 거지. 그래서 여기 이 축대가 다 응회암이에요. 비싸니까 저 벽돌은 위에만 쓰고 여기 밑에 있는 계단과 축대는 전부 다 응회암 거기서 나온 돌을 갖고 그냥 썼더라는 거죠. 그래서 이 두 개가 이렇게 겹치는 것들이 또 몇 개가 있어요. 그런 건물들이. 그래서 보시고 이제 두 번째, 이것은 제가 지금 연도 순으로 말씀드리고 있습니다. 20년도 1920년대 말에 유달산 응회암의 진언종을 시작하신 홍법대사라는 분의 그 부조죠. 저거는, 벽에다가 이 산을 파 가지고 만들어 놔요. 근데 이상하게 응회암이 나오는 데는 이런 불상들이 많아요. 일본에도. 그래서 여기다 해놓고 이 옆에는 다시 이제 부동명왕이 같이 있죠. 그래서 일본 사람들이 이걸 갈 때 패 가지고 가고 싶었는데, 이게 벽에 있는 거니까 이걸 그대로 온전하게 가져가기가 어렵잖아요. 그러니까 이제 이걸 그냥 놓고 갈 수밖에 없었는데, 이 부동명왕이 이 눈을 부릅 뜨고 있는 굉장히 증오의 신으로 모시는 분인데 무서워서 이걸 누가 파러 왔다가 무서워서 눈이 마주쳐서 도망을 갔다 그래요. 이건 실화래요. 그래서 그다음부터 안 건드렸다라는 얘기가 있는데, 혹시 시장님은 이거 알고 계셨어요? 다 알고 계시죠? 올라가 보셨어요?
그래서 거기 이런 일들이 있었고 연대입니다. 그다음에 드디어 이제 조선 사람들이 시작한 것이 나오기 시작합니다. 조선시대 사람들이 조성을 한 것, 여기 보면 양동교회입니다. 양동교회 지금 이 형태는 그대로 다 있습니다. 그리고 그 앞에다가 이렇게 종탑을 쌓았죠. 이것도 다시 보여드리겠습니다. 11년에 양동교회가 있었고요. 지금 이게 이제 새로 나중에, 제가 아까 보여드린 건 옆모습이었고 앞에다가 저 타워를 싸고 옆에다가 많이 훼손이 돼 있는데 안에는 더 많이 훼손이 돼 있습니다. 이것은 문화재청에 등록 자산 무형문화재인데, 안쪽은 문화재가 못 됐어요. 훼손을 너무 많이 해서, 그래서 여기 문화재과나 그리고 시장님 이것은 제가 보기에 원상복구 해야 돼요. 오른쪽에 저 옆에 있는 것도 잘못된 거고요. 저거는. 보통은 교회나 성당은 이렇게 탑이 있으면 이 양쪽에서 계단이 올라가거든요. 근데 이렇게 저쪽 앞에다가 저렇게 해놓은 것도 좀 고쳐야 될 것 같고, 안에도 정말 온전하게 원상복구해서 안에까지도 우리가 문화재로 지정이 되면 안에도 수리하는 비용이 나오거든요, 문화재청에서. 이것도 한번 꼭 고려해 주시고요. 그리고 그다음 여기 보시면 여기 900년에 했다라고 돼 있어요. 우리는 11년이라고 했는데, 910년이라고 돼 있거든요. 여기는 써 있기는. 잘 모르겠어요. 이건 어떻게 누가 만든 건지. 옆모습도 굉장히 아름다워요. 그리고 제가 이게 딱 보이는 게 이게 혹두기이라고 그래가지고 일본 사람들은 이것을 갈아서 편편하게 써요. 주로 응회암을. 그런데 한국 사람들은 이렇게 튀어나오게 써요. 근데 그것을 이따가 이 석장 하나가 이제 이름이 밝혀진 석장 한 분이 존재하는 분이 이분이 나타났는데, 이제 돌아가셨고 아들을 대를 이어서 하고 계세요. 석장으로. 근데 그분들 얘기를 들어보니까 이 혹두기를 좋아한 거예요. 한국 사람들이. 자연스럽고, 그런데 제가 봐도 그냥 이렇게 밀어낸 것보다 이게 약간씩 튀어나오는 게 훨씬 좋은데, 여기 보시면 창문에 있는 부분은 이렇게 돌을 갈아서 써요. 저기다가, 그렇죠. 응회암을 갈아서 편편하게 쓰고, 그리고 나머지는 다 이렇게 툭 튀어나온 채로 자연 그대로를 썼다라는 것도 볼 수 있습니다. 다음번에는 정말 정말 귀한 자료입니다. 1912년에 지은 거예요. 정명학교의 기숙사 선교사 사택이, 근데 저는 이 사택이 정말 너무 아름다워요. 그래서 우리가 만약에 응회암 투어를 하게 된다면 이것은 꼭 안에도 돌아볼 수 있게 해줬으면 좋겠어요. 그러면 안을 꾸미고 이것을 옛날 똑같이 안 하더라도 이것이 그 안에 들어갔을 때 밖이 어떻게 보이는가라는 것, 그리고 응회암 그 건물의 안쪽은 어떻게 유지가 되고 있는가를 우리가 만들어서, 이것을 뭐 얼마 들겠습니까, 저런 거는 다 지어 있는 거니까, 그래서 해서 보고 아래층만 보더라도 좀 봤으면 좋겠다 싶고 혹시나 여러분들 이렇게 생긴 건축물이 광주에도 하나 있는데 혹시 아세요? 양동, 양림동에 거기도 선교사 사택으로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 당시에 외국인 선교사들이 자기가 봤던 미국 남부 스타일로 이렇게 만든 것 같은 그런 느낌이 듭니다. 옆에서 보면 이렇게 밑으로 내려와서 거의 훼손이 안 돼 있어요. 창문까지도. 그다음에 이번에 목포 청년회관 이번에 목포시에서 문화재청의 도움을 받아서 이번에 새로 만들어서 열어놓은 겁니다. 여기도 사실은 손볼 게 많아요. 앞에 있는 이것이 이건 문화재거든요. 근데 이것을 관광지로 투어 코스를 돌리려면 앞에 몇 개 사서 헐어야 돼요. 그래서 앞에 들어가는 진입로를 좀 만들어 주셔야 되고요. 잘 듣고 계시죠? 그래서 이제 그렇고, 그다음에 옆모습도 이렇게 보면 여기는 조금 더 돌 석공이 조금 더 미숙한 사람 같아요. 그리고는 그다음에 그 유명한 공생원이 1928년에 생깁니다. 저는 이따가 이 투어코스 제가 보여드릴 텐데 투어 코스를 제가 한 5개 정도를 만들어 놨어요. 나중에 이걸 채워주시고 만들어 주시는 거는 이제 시에 계신 분들이 하셔야 되지마는 제가 이렇게 하면 좋겠습니다라고 용역한 것만큼 자료를 만들어 놨어요. 저는 이 일본인 투어를 한번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베이스 캠프는 저는 공생원이라고 보거든요. 그렇게 해서 공생원도 굉장히 소중한 건물인데, 여기는 더 응회암 벽돌이 엉성해요. 그러니까 저런 거는 그냥 기술자가 아닌 사람들이 한 것 같다는 느낌이 많이 듭니다. 옛날 건물인데 여기 앞에 아치로 저렇게 돼 있는 응회암은 이게 유일합니다. 옛날에 있었는데 또 흘린 것도 있고요. 굉장히 잘 만들었는데 저 뒷부분에 저 벽돌 건물이 사실은 이분들이 수리를 한다고 그러고 그냥 그 돌을 훼손시킨 거죠. 이 시리즈로 다 돼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그것도 나중에 우리가 이거는 아마 문화재가 된 게 아니겠지만 문화재를 하려면 응회암 문화재로 한번 이거를 조금 더 손 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이 유명한 건물 동본원사는 사실 이게 30년이 아니라 20년 뒤에 만들어졌어요. 일본 사람들이 오자마자 바로 그 진언종…. 이거 동본원사는 다른 건데 , 여기 이 동본원사에 일본 가면은 교토 가면 동본원사가 어마어마하게 크게 궁같이 돼 있습니다. 근데 그 동본원사를 처음에 지을 때는 여기다가 목조로 지었대요. 목조로 지었는데 30년대에 돌로 바꾼 거예요. 응회암으로, 그리고 그 앞에 입구나 그 계단까지도 전부 응회암으로 만들었어요. 그러니까 일본 사람들은 응회암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 사람들은 화산이 많기 때문에 일본 각지의 응회암 지역이 굉장히 많고요. 그리고 응회암을 얼마나 잘 쓰고, 돌 하나 갖고 먹고 사는 도시가 있는 줄도 이제 알았어요. 제가 이따 보여드릴게요. 그래서 이런 질의를 하면서 제가 진짜 여러분들을 같이 그리고 시장님 계신 데서 이렇게 시간을 할애 받아서 할 수 있다는 이 질의가 정말 너무 귀하다고 생각해서 사실은 이따가 많은 것도 질문을 할 건데, 지금은 먼저 보여드리려고 이제 하고 있습니다. 제가 보기에 목포에 있는 응회암 건물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물은 이 건물입니다. 아시죠? 영사관에 옛날 목포부청의 서고예요. 서류들을 넣어놓고 있었던 곳이거든요. 가장 잘 만들었어요. 그래서 저는 어찌 보면 이 건물이 목포의 응회암 건물을 한국의 석공들이 만들어 가는 데 교과서가 되지 않았을까라고 생각이 들 정도로 최고의 건물입니다. 그리고 이 모습도 너무 아름다워요. 이 옆모습을 보시면 옆에 계단이 위로 올라가고, 안에 계단이 없다는 뜻이죠. 이제 그렇게 해서 하고 있고요. 32년에 하고 나서 이다음에 이 기가 막힌 일들이 시작됩니다. 산정동에 있던 목포형무소 있잖아요. 그 형무소가 이런 돌로 돼 있었다라는 거 여러분들 다 잘 아실 거예요. 지금 하나도 흔적이 없는 거 아시죠, 정말 가슴 아픈 이야기인데 왜냐하면 그게 형무소라고 다 헐어버린 거예요. 남들은 그 형무소가 전 세계 어디나 다, 서울에도 서대문 형무소가 지금 얼마나 중요한 교육의 자산이고 문화재가 됐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우리 목포는 그 형무소를 50년대 초반에 다 헐어버렸어요. 이게 제가 보기에 목포의 시민들이나 또 그리고 이제 목포의 행정을 하시는 분들이 우리한테 소중한 것이 무엇인가, 우리가 후손들한테 물려내려야 될 것은 무엇인가, 우리가 없어야 될 것, 우리가 이 존치해야 될 것들에 대해서 사실은 그 개념들이 좀 없었지 않았나 그런 생각을 합니다. 형무소를 헐었다는 것은, 그런데 이 옆에 건물 한번 봐주세요. 옆에 건물. 그때 당시에 제가 지금 회장님한테 얘기를 들었는데, 1952년도에 그 목포 전 선대 회장님이 산정동에 그게 헐리는 게 너무 아까워서 건물 하나를 사셔 가지고 번호를 매겨서 똑같이 목포 본사에다가 옆에다가 이거 하나를 옮겨놓은 거예요. 그래서 저 입구에 있는 굉장히 묘한 건물이 하나 있는데 이게 형무소의 건물 중에 하나였던 것을 이렇게 옮겨놓은 거죠, 다행이죠. 그래서 이것도 나중에 목포 형무소가 그대로 옮겨왔다 해서 이거를 이제 나중에 이것도 문화재 만들고 해야 될 것 같아요. 그런데 제가 여기 들어가 봤거든요. 안에가 그 돌이 형무소 돌은 이렇게 커요. 굉장히 크고 있는데, 거의 다 정육면체나 직육면체 같이 두께가 이거 가로 세로하고 거의 같아요. 이렇게 두껍게. 그래서 그 안에는 내장을 하지 않았대요. 돌이 밖에도 돌이 보이고 안에도 돌이 보이는데, 이것이 쌓여져서 이 죄수들이 절대로 파고 나갈 수 없이 그렇게 해놨다는 거예요. 안에가 그렇게 돼 있어요. 지금 저 안에, 그래서 저것들을 한번 보시면 중요할 것 같아요.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때 지금 이 돌들이 만들어지고 30년대에 산정동에 그 많은 죄수들을 수용할 수 있는 그 건물들을 지속적으로 만들어요. 이 사람들이. 근데 그걸 만들 수 있었던 것이 산정동의 너무 큰 채석장을 만들었고, 채석장도 이 사람들이 만든 거예요. 파니까 응회암이 나오니까 여기 있는 재수들을 전부 다 바깥에 보내서 그 돌을 캐오게 만든 거예요. 그래서 이 돌을 보고 다 형무소 돌이라고 얘기했대요. 그 당시에는. 그 수감자들이 만들었고, 그때는 자료 보니까 거기서 수용할 수 있는 인원의 4배 정도의 죄수들이 있었다고 얘기를 해요. 43때 사람들도 다 올라왔고, 그래서 사실은 목포 응회암의 역사는 이 형무소에서 만들어낸 30년대, 20년에서 30년대 이때 초기의 역사에 굉장히 큰 의미를 둬야 된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33년에 북교동 성당인데 이것도 문화재로 돼 있지만 사실은, 이따가 또 보시겠지만 이 응회암 건물은 담쟁이을 못 자라게 해야 돼요. 얘네들이 무른 부분을 좀 파고들기도 하고요. 그리고 그다음에 그대로 보존이 된 게 36년에 만들어진 남진 생가의 저 담장, 근데 이 담장을 보면 제가 너무 놀라는 게, 가서 한번 다음에 지나다닐 때 한번 보세요. 지금 손양동이라고 지금 기록에 남아 있는 그분이 기록에 보면은 부자들은 큰 돈을 원했대요. 큰 돈은 인건비가 많이 들잖아요. 들고 다니는데도, 그래서 부자들은 큰 돌을 원했고 담장을 하찮은 담장을 남들은 다 이렇게 조각조각 있는데 이분들은 이 남진 생가는 큰 돌로 담을 쌓은 유일한 집이에요. 이 집이, 그래서 이때도 만드는 걸 보면 위에는 또 이렇게 돌을 바꾸고 굉장히 멋지게 만들어 놓은 담이에요. 근데 이 안에는 응회암을 안 썼어요. 집에는, 그런데 담을 저렇게 해놨다는 거. 그리고 낮아요. 너무 멋진 그런 지금 응회암의 흔적이라고 볼 수 있고요. 그리고 남진 자택이 혹시 생가가 문화재가 돼 있습니까?
저건 한번 해보세요. 저 무조건 되는 겁니다. 저거는 그 당시에 정원까지 그대로 다 있어요. 그래서 저건 무조건 되는 거고 그러면 좋잖아요. 우리 돈 안 쓰고도 할 수 있잖아요. 그렇죠? 그리고 광생병원, 여기도 굉장히 중요한 문화재 건물인데 여기는 아까 우리 장초석 봤잖아요. 이 응회암으로 너무 놀랍게 위에 초석까지도 다 응회암으로 밑에도 위에도 다 해서, 파서 만들었더라는 거지. 이 집도 사실 앞부분도 전부 다 저렇게 잘 돼 있어서 굉장히 중요한 건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는 지금 목포대학 목포사범학교 본관입니다. 여기는 아마 이거는 문화재 돼 있죠? 그렇게 해서 여기도 담장이 없어야 되는데, 그리고는 이제 54년에 만든 경동성당. 여러분들 이 연도에서 좀 이상하지 않아요? 34년으로 가다가 54년으로 가요. 물론 그 사이에 있는 건물도 또 있을 수 있겠지만 일본이 이제 전쟁에 참여를 하면서 여기에 사실 이쪽에도 영향이 좀 있었을까, 이 경동 성당은 54년에 지었는데 너무 놀랍게 65년에 앞부분에 종탑을 헐어냅니다. 신도가 많아졌겠죠. 이 54년에 대해서 뭐라고 얘기를 하냐면 그 목포대학에서 나온 논문과 그리고 이 손양동이라는 사람이 여기에 대한 기록을 해요. 근데 이 사람이 이걸 지었어요. 본인이 스케치를 해서 지었어요. 건축가가 아닌데, 이거를 다 지으면서 전쟁이 끝나고 나서 목포가 텅 비었대요. 자재도 없고 사람도 없을 때 섬에서 부자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대요. 난 그 기록이 너무 멋진 기록이에요. 이게 사실은 목포는 전부 일본 사람만 살았잖아요. 특히 원도심은, 근데 해남이나 영암이나 진도나 이런데 부자들이 들어왔는데 그때 부자들이 들어와서 학교를 짓자고 해서 자기가 학교를 지었는데 부자들은 큰 돌을 원했다. 그런데 성당이나 교회는 돈이 없어서 작은 돌을 쓸 수밖에 없었는데, 자기가 그 작은 돌을 어떻게 하면 아름답게 할지에 대해서 고민을 많이 하며 이 성당을 지었다라고 얘기를 기록으로 남겨놨어요. 그래서 이 성당이 작은 돌이지만 높낮이, 높이가 다 달라요. 그때 당시에 함께 했던 분들이 그 돌들을 갖다 버리느라고 많은 돈을 썼대요. 아까워 죽겠다고 지금도 그렇게 얘기하셔요. 그러고 나서 이게 지금 이번에 65년에 개축으로 해서, 개축 상태로 ’19년에 국가등록제 문화재가 돼요. 근데 문화재가 되는데 10년 걸렸어요. 왜냐하면 문화재청에서 훼손을 했잖아요. 이 54년의 기록을 훼손했기 때문에 50년이 되지 않았을뿐더러 근대 문화재로 하기도, 그리고 또 하나는 훼손을 하고 덧붙인 거, 그 뒤의 연도로 따져야 된다. 그래서 그 65년도에서 10년이 확실하게 50년이 지나서 이것이 결국은 2019년 한참 뒤에 될 수밖에 없었는데, 지금 또 어떤 일이 벌어졌게요? 우리 의장님은 잘 아실 것 같은데, 경동성당의 신도분들이 저 앞부분이 이게 너무 새는 거예요. 이거 보시면요. 이게 눈물 나는 일이 또 있어요. 이게 이어진 부분을 65년도에 콘크리트로 했습니다. 응회암 건물을, 그런데 그 부분이 새고, 문제가 생기고, 신도는 또 줄고 그러니까 20년 전부터 여기를 헐고 다시 종탑을 하게 해달라고 문화재청에다가 그 어렵게 문화재가 됐는데 문화재청이 화가 나겠습니까, 안 나겠습니까? 자기들이 훼손해 놓고, 이상한 거 덧붙여 놓고, 문화재로 해달라고 10년 해서 해줬더니 지금 와서 그거를 헐고 다시 종탑을 갖다 놓겠다고. 안 해줬어요. 문화재청이. 근데 정말 기쁘게도 우리 시장님이 정말 애써주셔가지고 지난주에 이것이 문화재청에서 오케이를 했어요. 종탑으로 다시 해주겠다고 예산 20억, 그리고 거기는 이제 가장 큰 역할을 하신 분들이 신도분들입니다. 신도분들이 10억을 거뒀어요. 우리 거 보태서 해달라, 기부 체납하겠다. 그래서 30억에 예산으로 종탑을 다시 하는데, 이 종탑을 하신 분의 아들이 이 일을 계속하고 있어요. 스케치가 다 있대요, 아버지 스케치가. 그래서 이것도 무난하게 할 것 같은데, 이제 우리 시장님이 이거를 온전하게 종탑이 완성되면서 이게 되면 다음 일들은 이제 좀 해 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정원도 좀 해야 되고, 스테인드 글라스도 좀 했으면 좋겠고…. 그리고 그다음에 제가 보기에는 이 문태고등학교가 58년도에 똑같은 손양동 씨가 이것도 지어요. 근데 이게 불이 나잖아요. 굉장히 좋은 건물인데 불이 났는데, 세상에 다 타고 응회암만 남아 있어요. 이 대목이 중요해요. 여러분들, 왜 남았지? 응회암은 불이 탄 재잖아요. 안 타요. 화강암석은 1,000도가 넘으면 터져요. 얘는 안 타, 그래서 다 타고 돌만 남아 있는 거를 민현식 씨 지금 장안에 제일 유명하신 그 건축가십니다. 이거 헐지 말고 내가 이 위에 새로운 건물로 교사를 짓겠다 해서 지금 민현식씨 작품으로 이제 문태고가 완성이 돼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보기에는 응회암을 사랑하는 건축가 중에 이제 민현식 선생님이 들어가고요. 그리고 여기 너무 웃기는 게 61년도에 만들었는데, 이거는 이 돌산을 본인이 깎아 갖고 자기가 이 돌산이 뒤에 집 뒤에 있었어요. 땅 뒤에. 그래서 그걸 깎아가지고 여기다 정미소를 만들었고 정미소가 교회가 됐다가 지금은 너무 멋진 피자집이 돼 갖고 지금 원도심에서 아주 날리고 있어요. 이 피자집이 송자 이탈리안이라는 집입니다. 가서 보면 감동합니다. 응회암이 사방에 다 있어요. 청소년 회관은 다 막아버렸고, 여기는 다 해놔서 이렇게 아주 잘하고 있고요. 그다음에 이제 제자들을 많이 만들면서 이런 길거리에 이런 집들이, 응회암 집들이 많아요. 이거는 문화재를 안 하더라도 저는 시에서 특별 관리를 좀 해 주시면 정말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꼼지락도 여기 돌 많았는데 다 없애버리고, 이게 견치석이라는 게 이제 이 축대를 쌓는 돌입니다. 그래서 이 축대가 또 엄청 많아요. 여기 있는 밑에 부분은 일본 사람들이 한 거고, 나중에 이제 이렇게 고칠 때는 이렇게 새 시대의 손길이 있는 거를 볼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여기는 동네, 자기 집은 자기 집이 쌓았어요. 이런 흔적이 전부 저는 이 목포 원도심의 응회암의 흔적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이런 것들을 이렇게 쭉 보시면서 저는 응회암을 그야말로 자신 있게 세계문화유산으로 만들 수 있다고 저는 생각을 합니다. 이제 시장님 잠깐만 나와 주시겠어요. 죽동 교회 아시죠? 죽동 교회 얘기 잠깐 해 주세요. 짧게. 어떡하다 이 교회가 없어졌는지.
조금만 계세요, 그럼 이게 지금 죽동교회 헐지 말라고 난리를 쳤는데, 그러니까 지금 말씀 들어보니까 이 사람들이 이미 시에 다 팔았던 거군요.
그런데 시에서 길 낸다고 이걸 하자고 했는데, 이렇게 반대를 했는데, 기사들이 굉장히 많아요. 어느 날 갑자기 불이 납니다. 여기가. 이거는 모두가 방화로 추정된다고 하는데, 불이 났는데 아까 말씀드렸죠. 타요, 안 타요? 안 타요. 그대로 이렇게 남은 거예요. 다 타고 응회암만 남았어, 남았는데 이게 이렇게 불타고 나서 며칠 만에 이거 헐어간 줄 아세요?
제가 보기에는 아니라고 그러던데,
바로 이거를 그냥 밤사이에 그냥 쓸어가 버렸다던데,
기록 잘못됐네, 이거 목포시에 아마 이거 관련되는 분 계실 거예요. 아는 분들 계실 거예요. 그런데 이 목포 죽동 교회가 아치가 너무 아름다운 교회였어요. 크진 않았는데, 제가 보기엔 이것은 있었으면 굉장히 중요한 문화재로 기록이 될 만한 너무 중요한 곳이었고요. 그래서 여기서 이제 기습 철거 파문입니다. 이거 기습 철거가 지금 4년도가 아니에요. 이게 그때가 불난 것도 4년인가요, 그럼?
그렇게 증언을 해 주시니까 제가 정확하게 그렇게 이해를 하겠습니다. 그래서 기습 철거를 해버리고요. 외국 문화재 철거 이건 정말 너무 아까운…. 죽동교회는 교회 중에서 최고였고요, 건축물로도 기가 막힌 교회에서 그래서 이렇게 지금 이렇게 초석 건립 기록이 세워져 있던 초석도 있고, 그리고 저 아치 모양의 저 달, 그리고 아까 말씀드렸잖아요. 이게 큰 돌로 만든 것들이 돈이 많이 들어간 그렇게 투자를 한 것이라는 거 그래서 이렇게 해서 했는데, 지금 더 기가 막힌 일은 2005년도에 그럼 철거를 하고,
4년도에 철거를 하고, 거기 지금 뭘로 쓰고 계세요?
길 낸다메,
근데 그 소공원을 거기서 체육시설을 몇 개 갖다 놓고 소공원 하려고 그러면 이거를 불탄 걸 헐어버린 거예요?
어쨌거나 지금 이렇게 돼 있어요.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냥 풀밭으로 두고 식당이고요, 그리고 옆에 체육 시설 몇 개 있어요. 좀 어이가 없죠. 그리고 여기 지금 여기 죽동교회만의 일이 아닙니다. 프렌치병원이 16년에 만들어진 꽤 큰 병원, 이것도 혹시 기록을 알고 계세요?
이게 16년에 굉장히 일찍 만들어져서 목포에 세워진 아마 첫 번째 병원이 아니었을까 이렇게 큰 종합병원으로, 외국인들이 세워…. 이것도 헐었어요. 없어졌어요. 소문에는 지금 여기 양동교회도 불이 났는데 양동교회 옆에 여기 타워를 세울 때 저 돌을 이용했다라는 소문이 있는데, 제가 정확한 거는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이제 대비되는 중축 지금 상황 아까 말씀 대강 드렸지만 이렇게 아름다운 성당이었어요. 이렇게 아름다운 성당이 이제 이렇게 됐고, 그 옆에 여기 빨간 선 있는 데를 증축을 한 거죠. 그 당시에. 그것이, 이건 제가 찍었는데 저는 응회암 건물 때문에 이걸 다 찍었거든요. 제가 그런데 보면서 왜 오른쪽에 저렇게 아름다운 돌이 있는데 왜, 왼쪽에다가 저런 걸 붙여놨지? 콘크리트예요. 근데 여기 자세히 보시면요. 저 오른쪽에 보면 손양동 씨가 돈이 없어서 작은 돌밖에 못 쓰지만 그 돌의 다양성을 주려고 옆에 높이를 돌을 다 달리하면서 맞춰 나갑니다. 이렇게. 너무나 중요한 곳이에요. 경동성당은 응회암의 사용 방법으로도, 그래서 이것이 이제 너무 여러 가지 얘기들이 나오고요. 그래서 그러고 나서 이제 손양동 선생님에 대한 말씀을 잠깐 드리면 이분이요, 목포 문화유산 25호라고 돼 있어요. 2013년에 지정을 했거든요. 근데 목포에 아는 분이 아무도 안 계세요. 근데 이분이 석장으로 그렇게 많은 일을 하고 정말 동상 세워놔야 될 분인데, 혹시 저 유산에서도 모르죠? 손양동 씨 몰랐죠? 알았나, 왜냐하면 이게 우리가 70년대가 들어오면서 응회암의 건물이 사라지기 시작합니다. 사라지기 시작하는데 이게 두 번이에요, 두 번의 응회암이 목포를 살려요. 일본 사람들 들어와서 건축 자재 없을 때 벽돌 대신에 발 밑에 있는 돌을 파서 쓰기로 해서 그 주옥 같은 건물들이 생겨났잖아요. 그리고 그다음에 전쟁이 끝나고 아무것도 없을 때, 그때 또 한 번 답이 됩니다. 그래서 50년대에 저렇게 주옥 같은 건물들이 생겨나는 거죠. 두 번을 살려요. 목포를, 저 돌이 유달산이. 그리고 지금 손양동 씨가 이렇게 했다가 지금 아들까지 하고 있어서 너무 다행이라고 이번에 이제 제가 그 생각을 하는데, 건축의 공백이 있었고 물자가 부족할 때 폭발을 한 수요가 섬에서 들어온 사람들이 원도심에다가 응회암 건물을 짓기 시작했다는 거죠. 그래서 생긴 게 문태고고, 경동 성당이고 다 생긴 거죠. 그래서 이 외국 사례 한번 보시면 이거 제주도도 이쪽 왼쪽은 응회암이고, 이쪽은 이제 그 층리고요. 그리고 광주에 무등산도 있고, 청송에도 있고, 부산에도 있고 그리고 카파토키아 이것도 다 응회암이에요. 근데 그들이 우리나라에 있는 그 지역들은 전부 다 뭘 했느냐 하면 그냥 그 동네에서 응회암이 발견됐다는 걸로 지질 연구소를 만들어요. 목포 사람들은 뭘해요? 파 갖고 집을 지었다고 그때 당시에, 근데 그게 지금 조선시대에도 너럭바위 위에다가 부처를 새기지 않나, 그리고 지금 해남이나 진도 같은 데서 다들 거기서 장초석으로 쓰지를 않나, 그렇죠. 그러고 나서 일제강점기 때 이 목포가 도시가 되니까 거기에 건축 자재로 그 돌을 갖다가 쓰기 시작한 거예요. 그래서 목포가 사실 지금 여러분들이 보물을 갖게 된 거예요. 그러니까 해방되고 전쟁이 끝나고 건축 자재가 없을 때 응회암이 두 번째 답이 되었고, 지금 제가 오늘 드리는 말씀은 이제 세 번째, 목포가 다 죽어가는 소멸해 가는 이 목포를 살리는 원도심을 살리는 데 또다시 세 번째 답이 되고 있어요, 용회암의 건물이. 그 말씀을 제가 오늘 드리는 겁니다. 그래서 여기서 보면 이 사람들이 이걸 관광지로 쓰고 있고, 나폴리 지하도시가 다 응회암입니다. 그럼 여기 지하 도시 얘네들은, 채석장이에요. 채석장을 이젠 기계가 다 똑바로, 옛날에 이렇게 손으로 하던 거를 이제 벽을 만들고, 여기서 공연을 하고, 거기서 조명이 어마어마하고, 여기 이제 제가 사례 또 보여드릴게요. 이러고 있는데 세상에 일본에요, 세상에 일본에 돌로, 응회암으로 먹고 사는 도시가 있더라고요. 제가 이걸 보고 정말 너무 놀랐고, 이 도시 지금 지하에 채석장이 높이 30미터의 채석장이 있어요. 이 사람들은 나폴리도 그렇고 다 땅굴을 파고 끝에 들어가서 팠는데 목포 사람들은 어떻게 했죠? 산이 전부 다 응회암이다 보니까 그냥 파낸 거예요. 그래서 우리는 땅굴이 없어요. 이게 근데 채석장이 있어야, 사실은 지하 채석장이 있어야 관광에 이거 하기가 좋은데, 이제 마지막으로 여기는 진짜 이쪽 거를 한번 봐주세요, 저쪽 거나. 보시면 이게 그 우쓰노미야라는 도쿄에서 신칸센으로 1시간 거리에 있는 우쓰노미야라는 도시는 오로지 응회암으로 먹고 사는 도시예요. 여기는. 근데 그 먹고 사는 도시에서 제1의 관광지가 채석장이야. 근데 채석장은 우리가 부러워해도 우리는 이게 없어요. 어디를 파내야 되는데 그거는 지금 할 수 없는 일이고, 조명을 너무 잘 만들고 그래서 모든 관광객이 오면은 이걸 보러 와요. 채석장을 보러. 그리고 여기서 공연도 해요. 여기는 1년 내내 7도래요, 온도가. 여름에도 7도, 겨울에도 7도 그리고 이런 데서 사람들이 와서 찍고 그리고 너무나 많은 그 공연이 여기서 있었고, 그리고 영화 촬영이 있었고 우리나라의 가수도 여기 가서 이제 사진 찍고 여기서 뮤직비디오 찍었다고 해요. 엄청나게 지금도 돈 많이 받고 이렇게 멋진 그 채석장을 이렇게, 사실 건축물이 아니니까 돈도 많이 안 들잖아요. 조명 값은 이 세계 최고의 조명 아티스트가 와서 했대요. 너무 멋있는 곳인데, 이렇게 해서 이런 데를 벽을 그냥 갈아서 했고 여기는 연구소가 또 있는데 연구소 앞에도 응회암을 이런 거를 그냥 두고 길을 내 가지고 이렇게 하고 있습니다. 우쓰노미야라는 이 도시에, 그리고 여기서 최고 제가 보여드린 거 이거는 우리가 할 수 있어요. 이거는 옥외에 있는 채석장입니다. 산정동에 잘 정리하면 전 이건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리고 보니까 얘네들이 이 돌이 어차피 물이 안 빠지잖아요. 그러니까 여기다가 물을 고여놨어요. 그렇게 해서 사람들이 여기를 들어가서 이렇게 보는데, 이 채석장이 이렇게 주변의 채석의 흔적으로 목포에 제가 보니까 산정동도 있고, 여기 이게 대반동도 있고 해서 한 다섯, 여섯 개는 옥외의 채석장이 만들어져야 돼요. 그거는 예산을 만들어서 해 주셔야 돼요. 돈 많이 안 들어요, 건물 안 지으니까. 그래서 이런 것들은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리고 이게 정말 멋진 게 뭐냐 하면 돌이 있는데 응회암에는 이끼가 잘 끼고, 그리고 여기 조그마한 나무들은 또 위쪽에 자라날 거 아니에요. 그래서 이렇게 하면 이런 거는 제가 채석의 흔적으로 만들면 이 모든 게 이제 완성이 됩니다. 이거 보세요. 이런 거, 이런 거 있다니까 우리도, 할 수 있다니까? 그렇죠. 대반동에도 할 수 있고, 유달산에도 곳곳에 있고, 물 안 넣어도, 되고 물 넣어도 되고요. 그리고 얘네들이 벽에다가 저기다 저렇게 이제 절을 하나 지었고, 여기 성당이 하나 있어요. 스위스 사람인데 일본에서 수십 년 살면서 성당을 지었는데, 로마네스크 양식인데 제가 보기에는 이것이 구글 가면은요, 뭐라고 나오냐면 거기 가면은 세계에서 유일한 응회암으로 지은 성당이라고 나와요. 그래서 제가 고칠 거예요. 우리 경동 성당 두 개잖아요. 하나가 있다면 우리가 두 개, 국내에서 유일한 응회암 성당이 될 것이고요. 그래서 이 성당은 이게 오래되지 않아요, 이것도 30년대에 만든 건데요. 이렇게 됐고, 그리고 그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라고 되게 유명한 건축가 돌아가신 19세기 말에 살았던 분인데, 20세기 초 이분이 일본을 좋아해서 제국 호텔을, 이게 제국 호텔이에요. 대국 호텔이 원래 이렇게 만들었어요. 이렇게 있던 것을 이제 저쪽으로 옮겨놓고 거기에 이제 높은 걸 했죠, 이게 사람을 많이 재우지 못하니까. 이게 전부 다 응회암으로 장식이 돼 있습니다. 그래서 이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는 응회암을 좋아한 작가로, 이런 것도 옛날 응회암 창고를 이렇게 고쳤어요. 우리 이런 창고 많은 거 아시죠? 우리 정말 멋있는 응회암 창고가 이 원도심에만 10개도 넘어요. 제가 창고에 살고 있어요. 지금. 그리고 창고를 유심히 보면 응회암 창고, 아까 피자집 하는 데 같이 이런 창고를 구마겐코라는 사람이 옆에다가 물 넣고, 옆에 몇 개 더 지어서 이게 나스라는 관광지에 엄청 유명한, 여긴 제가 가봤는데 옛날에 나스에 거기 있는 이 구마겐코의 창고고요. 그리고 이렇게 만들어 놓은 거예요. 그리고는 요번에 까르띠에 서울에서 전시하는데 응회암으로 옆으로 장식을 해놓은 거야. 그것도 전부 다 이게 우쓰노미야에서 했고, 그래서 이런 것들을 보면서 우리가 이제 할 수 있는 것들을 제가 찾아봤어요. 체류 시간 부족한 거, 콘텐츠 편중돼 있는 거, 차별화 없는 거, 스토리텔링 없는 거를 다 용회암으로 만들 수 있다는 거, 그리고 그다음에 오야석, 여기 우쓰노미야는 여기서 8km 안에 5개가 들어 있어요. 볼거리가. 우리는 어떨까요? 우리는 2km 안에 30개도 넘어요. 모여 있다는 거지. 그래서 우리 거를 제가 한번 해봤어요. 반경 2km 이내에 지금 건물들만 해놨고, 축대도 있고, 뭐도 있고 다 있어요. 이걸 하면은 제가 할 수 있는 게 여기 제가 5개를 해 봤어요. 응회암 골목 한 바퀴 1시간짜리 투어, 석공 손양동이 만든 것만 다니는 3시간, 돌이 쓴 목포 역사 100년 세 번째, 그리고 유달산 코스 위에만 도는 거죠, 이런 것. 그다음에는 목포에 있는 일본 투어, 6개를 하면은 이거는 금방이 이 베이스 위에 다 하실 수 있어요. 그렇게 하면 이게 첫 번째는 이렇게 돌 수 있고, 두 번째는 이렇게 돌 수 있고, 제가 다 점 찍은 건데 이거보다 더 많아요. 사실은. 그렇게 해서 5시간 코스, 그래서 이렇게 해서 저는 사실 지금 다시 한 번 이 스토리텔링의 석공의 체험에다 이런 것들을 다 만드는 거죠. 조사 발굴하고, 이건 이제 시가 해 주셔야 되는 일이에요. 그런데 빨리 해 주시면 좋겠어요. 어떻게 지금 사실 건물들이 다 있기 때문에 큰 돈 들어가는 게 아니에요. 코스 만들고, 초석 같은 거 만들어 주고, 그리고 이제 제일 중요한 게 채석장을 조성도 그것도 건물 아니고 그냥, 이제 기계가 잘 판다고 그래요. 이렇게 해서 있는 흔적에다가만 해주면 저는 내년 초부터 한번 시작할 수 있다면 이걸 투어 코스를 먼저 시작할 수 있거든요. 그러니까 예산 조금만 만들어 주시면 이걸 갖고 전쟁 후에 응회암이 살리고, 일제강점기에서 또 목포를 응회암이 살렸듯이 이제 목포 원도심을 응회암으로 시작해서 다시 살리는 길로 한번 가보고 싶어서 제가 오늘 질의를 준비했고, 그동안 준비해 놓은 것들을 갖고 이제 시장님께 드립니다. 그래서 시장님 오늘 이 얘기 들으시고 마지막으로 어떻게 한번 도와주실지를 얘기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제가 다 했는데 뭐 또 해요. 그거 쉬운데, 다 했는데.
빨리 좀 해서, 그리고 투어의 서사도 만들어야 되고 이런 것들을 하고, 그리고 우리 목포시청의 담당자분들은 지금 한 3개 정도를 문화재로 등록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대신 우리가 좀 손을 봐야 돼요. 원상 복구를 조금 해놔야지만 할 수 있는 것들이 있어서 그것도 여기에 뭐 문화재청은 사실은 이런 것들을 찾는 데 더 이상 없거든요. 근대 문화재가, 그래서 그렇게 해서 꼭 좀 오늘 말씀하신 대로 해서 그야말로 다시 응회암이 빠른 시일 내에 이 목포를, 원도심을 살아나게 하는 데 도움을 주시기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끝까지 열심히 하겠습니다.
형완

이형완의장

손혜원 의원님! 수고하셨습니다. 자리로 들어가시기 바랍니다. 다음은, 최현주 의원님께서는 발언대로 나오셔서 질문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O 최현주 의원

최현주의원

손혜원 의원님! 수고하셨습니다. 자리로 들어가시기 바랍니다. 다음은, 최현주 의원님께서는 발언대로 나오셔서 질문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O 최현주 의원
의원님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최현주 의원입니다. 민선9기가 출범한 지 3개월 정도 경과하고 있습니다. 현재 지역에서는 국립 신설 의대 추천 문제로 대단히 긴박한 정국입니다만, 목포시의 미래인 아동ㆍ청소년들이 살기 좋은 목포를 위해 제안할 내용이 있어 시정질문을 준비하게 되었습니다. 아동친화도시 지정 관련 목포시의 현황과 이후 계획에 대해 질문하겠습니다. 고영배 자치행정복지국장님께서는 발언대로 나와주시기 바랍니다.
영배

고영배자치행정복지국장

자치행정복지국장 고영배입니다.

최현주의원

국장님, 고생 많으시죠?
영배

고영배자치행정복지국장

괜찮습니다.

최현주의원

아동친화도시 관련해서 잘 알고 계실 것 같고요. 해당 국장님이시기 때문에 간단하게 아동친화도시 관련해서 개념을 말씀해 주십시오.
영배

고영배자치행정복지국장

제가 알기로는 아동의 권리가 우리 지방정부 지방자치단체 정책이라든가 행정 전반에 반영되는 도시로 알고 있고요. 또 아동이 행복하고 또 아동을 배려하고 아동의 생각과 정책들이 우리 시정에 반영되는 그런 아동친화도시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최현주의원

예, 아동친화도시는 유엔아동권리협약을 준수하면서 청소년들이 단순한 보호대상이기보다는 시민의 주체로 성장할 수 있도록 지자체에서 정책과 예산을 지원을 하는, 말씀하신 것처럼 아동ㆍ청소년들이 살기 좋은 목포가 바로 아동(청소년)친화도시라고 볼 수 있습니다. 아동친화도시 관련해서 목포시는 지금 인증이 안 돼 있는 상황인데요. 전국 현황을 잠깐 먼저 보겠습니다. 아동친화도시 인증 현황을 보면 지금 인증도시는 110개입니다. 그리고 이걸 추진하고 있는 데가 19개 지자체고요. 전남도 최초 인증을 받은 데가 나주, 여수, 화순, 해남, 강진, 장흥, 영광. 상위 인증. 그 단계를 넘어서 상위 인증을 받은 곳이 순천과 광양시입니다. 그리고 현재 추진 중인 지자체는 목포시와 담양군입니다. 그리고 저희가 통합이 됐기 때문에 광주전남 현황도 잠깐 보겠습니다. 광주는 광역시 자체가 인증이 됐고요. 그 아래 5개 구가 있었습니다. 남구, 서구, 광산구, 북구, 동구 해서 이 5개 구가 아동친화도시로 인증이 됐습니다. 그래서 서로 광역시와 지자체가 협력해서 아동친화도시 기반을 만들고 있는 모범적인 사례라고 볼 수 있고요. 쭉 자료에서 보신 바와 같이 지금 전남 목포, 그러니까 시 단위로 봤을 때는 목포시만 지금 제정이 안 돼 있는 상태입니다. 지금 목포는 추진 중이다라고 나온 이유가 있습니다. 아동(청소년)친화도시 추진 현황을 보면 2016년에 관련해서 조례가 제정이 됐고요. 2019년에 친화도시 만들기 정책토론회가 진행이 됐습니다. 그리고 관련해서 그 당시에는 아마 아동친화도시를 인증을 받기 위해서 관련 조례가 전체적으로 개정이 됐고 2021년에 목포시 아동친화도시 조성을 위한 연구용역까지 진행이 됐습니다. 그리고 최초 조례를 만든 이후로 10년 정도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증이 안 된 이유가 있죠?
영배

고영배자치행정복지국장

의원님께서도 방금 언급하셨듯이 저희 시는 아동친화도시 인증을 받기 위해서 2020년도에 아동친화도시 기본계획을 수립을 했고요. 그다음에 2021년도에 관련 용역을 진행한 바 있습니다. 그러나 유니세프에서 그 당시에 성과지표라든가 가이드라인을 개정하는 사항이 발생했었거든요. 그래서 2022년 12월부터 2023년 11월까지 약 1년 동안 신규 접수를 중단하는 사항이 발생했었습니다. 그래서 저희 시는 그때 준비를 하고 있다가 그런 유니세프 내부적인 사항 발생으로 인해서 더 이상 추진을 못하고 중단된 사항이 있었다는 말씀을 드리고요. 그래서 지금 민선9기 들어와서 다시 인증을 받기 위해서 저희가 추진하고 있다는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최현주의원

예, 그래서 유니세프에서, 방금 국장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인증평가 기준이 변화가 왔었던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까 용역을 하고 나서는 그래도 2023년부터 해서 쭉 2025년까지 관련한 토론회가 진행은 됐어요. 그 토론회는 아동ㆍ청소년들이 목포시에 제안하는, 정책적 제안을 하는 이런 토론회였고요. 굉장히 현장에서 보는 눈은 우리가 제안하는 것과 현장에서 아동들과 청소년들이 제안하는 정책은 실질적인 실효성 차원에서 굉장히 많은 차이가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게 계속 사장이 되어 왔던 이런 과정입니다. 그래서 유니세프에서 아동친화도시 인증을 받을 때 아동권리 전담 조직을 가장 선차적으로 요구를 했습니다. 이게 평가기준의 변화인데 목포시에서는 그동안 이 아동권리 전담 조직이 구성이 안 됐죠? 이게 결국에는 첫발을 떼지 못하고 계속해서 몇 년을 중단하면서 오는 이런 상황이 발생이 됐다라고 보고 있습니다. 이 아동 전담 조직을 가장 선차적인 조건으로 내세운 이유가 있을 것 같거든요. 이에 대해서 국장님은 어떤 의견을 가지고 계십니까?
영배

고영배자치행정복지국장

어차피 유니세프에서 아동친화도시 인증을 받기 위해서는 전담 조직이 필수조건입니다. 따라서 저희 시에서는 의원님이 말씀하신 대로 전담 인력을 구성해야 되는 실정인데요. 일단 우선은 저희가 전담 인력은 내년 1월 인사에 바로 반영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하겠고요.

최현주의원

예.
영배

고영배자치행정복지국장

부서 명칭 변경도 또 있기는 한데 그런 부분들은, 팀 명칭 변경이나 이런 부분들은 차후에 우리 조직 전반적으로 봐서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최현주의원

예, 그래서 이게 전담 조직으로 최초 관문을 만들어놓은 이유가 있다고 생각을 하거든요. 아동친화도시 인증 관련해서 서류를 총괄하는 것도 굉장히 많이 어렵고요. 그다음에 이 관련해서 필요하다면 조례 재개정도 필요하고 그에 따른 아동 계획도 세워야 되는 거고 또 예산도 편성을 해야 되고 그에 대한 예산이 잘 쓰여지고 있는지 영향평가 이런 것도 같이 진행을 해야 되기 때문에 뭐 1명의 전담 공무원으로 저는 진행할 수는 없는 상황이다라고 보고요. 이후에 살펴보겠습니다만, 아동ㆍ청소년, 뭐 우리가 청년 이게 아동기본법, 청소년기본법에 따라서 이 규정 자체가 좀 다르기는 합니다. 연령을 어떻게 보느냐. 그러다 보니까 아동ㆍ청소년ㆍ청년 이게 굉장히 부서가 여러 곳에 지금 분산돼 있는 거거든요. 그럼 이걸 모아서 조정을 할 어디 전담 부서가 필요한 것 아닙니까? 그래서 이런 문제 때문에 저는 안정적으로 아동친화도시가 조성이 되고 유지가 되고 또 다른 지자체처럼 상위 인증까지 가기 위해서는 전담 부서가 꼭 필요하다라고 아마 최초 조건으로 내걸었다고 보고 있고요. 방금 말씀하신 것처럼 우리가, 강성휘 시장님께서도 이것은 공약으로 지금 걸고 계시고 제가 알기로는 저도 같이 활동을 했습니다만, 시장님 하시기 전에. 청소년 관련해서 많은 활동을 하신 것으로 알고 있어요. 1월 조직개편에, 방금 국장님께서는 인력이라고 말씀하셨나요?
영배

고영배자치행정복지국장

그렇습니다.

최현주의원

전담 인력 정도를 고민을 하고 있다라고 이야기를 하셨네요. 지금 고민은 그 정도로 돼 있다는 거죠?
영배

고영배자치행정복지국장

의원님, 제가 추가적으로 말씀드려도 될까요?

최현주의원

예.
영배

고영배자치행정복지국장

지금 아동친화도시 관련해서 전국적으로 보니까 아동청소년과가 설치돼서 조직적으로 운영하는 데가 제가 파악하기로는 37개 정도 저희가 파악을 했습니다. 왜냐하면 저희가 조직 운영상 현재 의원님 말씀처럼 저희 여성가족과 내에 아동청소년팀에서 아동 관련, 청소년 관련 복지 업무를 중점적으로 담당을 하고 있고요. 인재육성과에서는 교육 문제를 지금 중점적으로 지금 관리를 하고 있습니다. 이 부분은 어떻게 보면 명확하게 업무가 분할돼서 한계가 명확하게 지금 분리돼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에 차후에 과 단위 신설은 저희가 인증까지는 2~3년 정도가 소요가 됩니다. 그래서 그 과정을 좀 보면서 저희가 신중하게 조직 전체적으로 봐서 검토를 해 나가겠다는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최현주의원

예, 그래서 지금 용역을 준비 중이신 것으로 알고 있고요.
영배

고영배자치행정복지국장

예, 그렇습니다.

최현주의원

또 1월에 이제 조직개편을 준비 중이시기 때문에 제가 간단하게 다른 지역사례를 통해서 참고하시라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지금 목포시 현재, 방금 국장님께서도 언급을 하셨습니다. 조직의 구조적 한계로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은 여성가족과에서는 아동ㆍ청소년 지원사업을 주로 하고 있고요. 그다음에 교육지원은 관광문화교육국에 인재육성과에서 하고 있습니다. 청소년 일자리 관련해서는 미래전략산업국에 청년인구과에서 하고 있고요. 또 아동들과 직접적으로 연관이 되겠죠? 그래서 교통ㆍ공간ㆍ안전ㆍ문화 이것은 또한 다수 부서에서 지금 진행을 하고 있는 이런 상황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하다 보면 이게 종합해서 어디선가는 총괄해서 사업이 진행이 되어야 되는데 그것에 한계가 좀 있다라는 말씀을 드리고요. 방금 국장님께서도 말씀하신 것처럼 처음에 아동친화도시 인증한 곳은 거의 다 복지국 안에 팀이었어요. 아동친화팀이었는데 지금은 아동청소년과로 변화를 해 오고 있다라는 말씀을 드리고요. 서울 강북구 같은 경우는 지금 복지국에 청소년과가 있습니다. 그래서 복지국 산하에 있는 청소년과를 신설을 했고요. 청소년과 안에 아동친화팀을 두었습니다. 그래서 부구청장을 단장으로 해서 17개 부서, 44개 팀, 75명이 실무 추진단을 구성을 해서 참여를 하고 있고요. 다음은 아동친화도시 했을 때 가장 모범적인 곳으로 완주군을 뽑습니다. 완주군 같은 경우에도 2025년에 아동정책을 총괄할 수 있는 아동친화과를 행정자치국 안에 신설을 했습니다. 그래서 완주군 같은 경우는 어린이ㆍ청소년의회가 별도로 있어요. 그래서 시장님께서 아이들을 의원으로 직접 임명을 하고 있고 그다음에 아이들이, 저희가 행정복지센터처럼 민원을 가서 말할 수 있는, 본인의 민원들을 넣을 수 있는 이런 아동민원센터도 구성이 돼 있습니다. 그리고 아이들이 청소년의회나 아동의회를 하면서 해외에 직접적으로 가서 교류사업도 진행을 하고 있고요. 그다음에 아동들이 정책 제안을 하면 실제 본인들이 설계에 참여하고 감리에도 참여를 해서 아이들에게 친화적인 이런 공간 조성이 될 수 있는 이런 사업들까지를 지금 진행을 하고 있거든요. 그래서 완주군 홈페이지에 들어가시면 아동친화도시 홈페이지를 별도로 이렇게 들어갈 수가 있고요. 여기 안에 많은 것들이 집적이 되어 있습니다. 아동ㆍ청소년 관련해서 저기 클릭해서 들어가면 모든 것을 볼 수 있게끔. 저기 가면 아이들이 예산 시청도 할 수 있고요. 또 아이들이 갈 수 있는 안전한 곳은 어디인지. 아동 친화 가게는 어디에 있는지. 그리고 아동119 해서 아이들이 필요할 때, 긴급할 때는 어디로 가야 되는지 이렇게 집적이 돼 있는 상황이라는 말씀드리고요. 아동친화도시 우수 지자체 사례 해서 지금 청소년과로 해서 팀보다는 과로 지금 전환되고 있다는 말씀드렸잖아요. 광주 사례는 아까 간단히 제가 말씀을 한번 드렸었고 광역과 지자체가 연계해서 하고 있는 이런 모범사례로 볼 수 있고요. 성북구 같은 경우에는 아동친화도시 중심의 어떤 통합행정 모델로 고려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경남 김해시 이거는 목포시하고 좀 유사하게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싶은데요. 아동친화도시, 아동권리ㆍ참여, 돌봄, 보호, 청소년 활동ㆍ시설ㆍ상담 이것을 통합적으로 해서 운영하는 방식입니다. 그리고 경기 안양시는 교육지원, 미래교육 그리고 진로, 청소년 활동ㆍ복지ㆍ안전 이걸 통합을 해서 교육과 청소년정책이 지금 통합돼 있는 이런 사례로 보실 수 있겠습니다. 그리고 대구광역시 북구는 여기도 마찬가지로 교육청소년과에서 교육과 청소년 사업이 연계돼 있는 이런 상황입니다. 그래서 각기 지역에 여러 가지 행정 모델이 있고요. 그래서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목포에서도, 실은 아동은 실제 보호를 받아야 되는 것이잖아요. 그래서 보호받는 아동에서 참여하는 청소년으로 그리고 지역에 정착하는 이러한 청년으로 이렇게 성장의 사다리를 통합할 수 있는 부서가 저는 필요하다라고 생각을 하고. 그래서 목포형. 이번 기회에 목포형 아동친화도시 관련해서 과 단위로 부서를 신설을 해 주셨으면 좋겠다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제가 잠깐 완주군 사례를 말씀드렸었는데요. 완주군은 지금 거의 군 단위가 인구소멸지역임에도 인구가 계속해서 증가하고 있습니다. 물론 아동친화도시 때문이라고 이야기할 수는 없겠습니다만 완주군에서 지역 정주여건을 제대로 만들기 위해서 생애주기별 맞춤형 사업을 진행을 하고 있고 그중의 하나가 아동들이 행복한 아동친화도시 이게 한 몫을 담당하고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히려 전주에서 완주로 이사가 들어오는 상황. 이것은 그만큼 정주여건이 질이 높아지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청소년과 신설 제안. 이건 그냥 부서를 한 곳에 모으자 이런 이야기는 아니고요. 목포의 미래 인구를 고민하면서 저희가 인재를 키우면서 청년이 정주할 수 있는 장기적인 도시정책이라고 생각해서 제안을 드립니다. 이에 대해서는 아까 답변을 하셨기 때문에 또 시장님께서 듣고 계시기 때문에 충분히 고려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이번에 추진하는 용역 또한 이게 저희가 인증을 취득하기 위한 용역보고서 이렇게 돼서는 안 될 것 아니에요. 그래서 국장님께서 그에 대해서 고민하실 것 같은데 목포에서 아동과 청소년이 어떻게 성장하고 또 청년이 된 후에도 목포에 어떻게 하면 정주할 수 있을 것인지. 어떤 미래세대 종합계획처럼 현장과 밀착되게 해서 연구용역을 진행해 주시기 바랍니다.
영배

고영배자치행정복지국장

예, 그렇게 하겠고요. 의원님께서 오늘 제안해 주신 내용은 적극적으로 공감을 합니다. 그리고 감사드리고요. 좀 전에 다른 지역 우수사례도 말씀해 주셨는데 그런 부분까지 저희들이 면밀히 반영을 해서 우리 목포가 아동친화도시의 가장 모범적인 도시가 될 수 있도록 그렇게 착실하게 준비를 해 나가겠습니다. 다만, 아까 조직개편 관련해서 과 단위 신설 부분은 저희가 인증하는 기간 동안 2~3년이라는 기간이 또 소요되기 때문에 충분하게 그 부분은 내부적으로 검토하고 조직개편 전체적인 것을 해서 한번 그 부분은 신중하게 검토하도록 하겠습니다.

최현주의원

예, 그거는 뭐 시장님의 권한이기 때문에. 저는 이제 제안을 드리는 거고요. 용역 하실 때도 만약에 필요하다고 하면 그러한 과 단위로 바꾸는 문제 이런 것까지 포함해서도 고민을 한번 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영배

고영배자치행정복지국장

실은 전남광주에서도 지금 시 단위에서는 저희 시만 아동친화도시가 인증을 못 받고 있는데 그 지역에서도 지금 현재 청소년과나 아동청소년과. 과 단위 신설은 아직은 없거든요. 그래서,

최현주의원

알고 있습니다.
영배

고영배자치행정복지국장

그 부분은 좀 이해를 해 주시고요. 그 부분은 충분하게 저희가 의원님 말씀에 공감하고 있습니다.

최현주의원

그래서 저는 지역의 특성이 있어야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제가 광주전남통합시 전체적으로 팀으로 구성돼 있는 것 잘 알고 있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까 완주군 사례를 제가 말씀드린 건 목포가 시장님께서 저희 지역에 시민과의 대화에 왔었을 때도 가장 강조한 것이 정주여건. 배후도시다, 목포는. 정주여건 조성을 정말 잘해야 된다고 누차 강조하셨고 그런 측면에서 봤을 때는 조금은 선도적으로 목포만의 특성을 찾아가는 것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점에서 특히나 아이들이 정말 지역에서 잘 성장하는 것은 무엇보다 우리에게 가장 소중한 일이잖아요. 그래서 고려를 해 주십사 하는 말씀입니다.
영배

고영배자치행정복지국장

예, 잘 알겠습니다.

최현주의원

국장님, 수고하셨습니다. 자리로 돌아가십시오. 다음은 광주 군공항 무안 이전에 따른 목포시 대응과 관련해서 질문하겠습니다. 강성휘 시장님께서는 발언대로 나와주십시오. 시장님, 요즘 애 많이 쓰십니다.
제가 군공항 문제 질문하기 이전에 저희 2024년도 목포시 아동학대 신고건수를 말씀을 드립니다. 시장님께서도 잘 알고 계실 것 같은데요. 전남에서 아동학대 신고뿐만 아니라 살해해서 하는 것도 가장 높습니다. 이 말은 목포가 전남에서 학교폭력, 가정폭력 그러다 보니까 아동학대 이 숫자도 가장 많거든요. 그래서 저희가, 공직에 있는 사람들이 무엇보다 고민해야 될 것은 아이들이 정말 안전하게 살 수 있는 이런 도시를 만들어야 된다고 생각을 하고요. 그런 의미에서 이 도표를 먼저 말씀을 드렸습니다. 앉아계시면서 아동친화도시 관련해서도 이야기를 들으셨을 것 같은데 용역과 그다음에 전담 부서에서 과로 승격하는 문제. 이에 대해서 시장님 생각은 어떠신지. 또 권한을 가지고 계시기 때문에 간단하게 말씀해 주십시오.
예, 시장님께서 제가 말씀드리지 않아도 현장 상황은 많이 잘 알고 계시기 때문에,
예, 충분히 반영해 주시기 바랍니다. 다음은 광주 군공항 무안 이전 관련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2014년 광주 군공항 이전이 제안된 이후로 결국 12년이 흘렀고요. 무안군 망운면으로 오게 될 이런 상황입니다. 특히나 호남권 반도체 메가클러스터 사업하고 광주 군공항 종전부지로 그게 확정이 되면서 큰 이변이 없는 한 무안으로 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렇게 봤을 때는 남은 절차는 하나인데요. 정부가 이전 주변 지역에 지원계획을 세우며, 국방부장관이 무안군수에게 주민투표를 부치고 그 결과를 반영해서 무안군수가 국방부장관에게 유치 신청을 하는 이런 절차를 지금 남겨두고 있습니다. 물론 현재 의대 문제로 굉장히 지역도 어수선한 상황이고 시장님께서도 여력이 많이 없으실 것으로 생각합니다만 군공항 문제 관련해서 신경을 쓰셨어야 되는 것 아니냐 이런 말씀을 드립니다. 통합특별시 청사 문제 그리고 의대 문제 이게 지역에서 불거지면서 서남권 홀대론 이런 이야기까지 지금 나오고 있습니다. 이 점에 대해서 시장님께서도 알고 계시죠?
현장에 다니시면서 그런 이야기 많이 들었을 것 같고요. 제가 이 광주 군공항 시정질문 준비하면서, 아마 답변 준비하면서 시장님도 좀 어려우셨을 것 같은데 저도 굉장히 어려웠습니다. 왜냐하면 무안군 망운면으로 온다 빼고는 그 어떤 내용도 지금 나와 있지 않은 상황이거든요. 그래서 결국 추론과 예측으로 말씀을 드릴 수밖에 없고요. 그런 상황이어서 저도 고민을 좀 했습니다. 그래서 목포시민들께서 그럼 이 문제를 어떻게 인식을 하고 계실까. 이런 고민을 해서 시민 설문조사를 진행을 했습니다. 목포민주시민연구소에서 9월 14일부터 9월 19일까지 광주 군공항 무안 이전 추진 문제와 관련해서 목포시민들은 어떻게 인식을 하고 있냐라는 설문조사를 했고요. 이에 대해서 오백이십오 분이 답변을 주셨습니다. 저희가 사전에 “무안공항은 이렇습니다. 이전되는” 뭐 이런 것 전혀 정보 제공 없이 찬성하냐, 반대하냐. 찬성하는 이유는 무엇이냐, 반대하는 이유는 무엇이냐. 이렇게 설문조사를 했기 때문에 이게 저는 아주 객관적으로 시민의 여론이 반영됐다라고 이야기할 수는 없더라도 목포시민들이 이 문제와 관련해서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경향성은 파악을 할 수 있다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그거를 간단하게 한번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군공항 무안 이전 관련해서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대해서는 반대 의견이 50.3%였고요. 찬성이 45.1%였습니다. 그래서 실은 이게 막, 저는 이렇게 생각을 안 했습니다만 어떤 특정 의견에 지금 쏠려있는 현상은 발견할 수 없었고요. 그런데 여기에서 조금 저희가 주의 깊게 볼 수 있는 거는 찬성여론이 60대 이상에서 많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30대 이하, 40대, 50대 같은 경우는 50% 이상이 반대를 하는 거고요. 60대 이상은 59.3%가 지금 찬성을 하고 있는 이런 상황입니다. 그래서 만약에 이전이 된다면 목포에 소음피해를 줄 거냐에 대해서는 반대하시는 분들은 96.6% 피해가 심각할 것이다라고 예상을 하고 있는 거고요. 나는 무안공항이 오는 것 찬성한다. 이런 분들도 66.6%가 소음피해는 발생될 것으로 예측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찬반에 참여를 안 하신 분들. 무응답 이분들도 70.8%가 소음피해는 발생이 될 거다라고 지금 보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시민 10명 중에 8명 정도는 소음피해에 대해서 예측을 하고 계신 것 같은데요. 이 결과 보시면서 시장님 생각은 어떠십니까?
그것뿐이십니까?
예, 그렇습니다. 이건 대부분이 아마도 군공항 하면 떠올리는 소음 때문에 아마 그렇게 생각하셨을 것 같고요. 반대하는 입장에서의 이유는 이것도 또한 소음입니다. 전투기 비행 소음 피해를 우려하는 거고 소음이 왔을 때 주거환경이 악화되고 재산권이 침해를 받을 것이다. 뭐 관광도 그렇고 이미지 손상도 좀 있을 거다라는 소수 의견도 있었고요. 찬성은 저희가 지금 통합 공항으로 이야기를 하다보니까 무안공항이 오게 되면서 지역경제도 같이 활성화되리라는 예상을 하시면서 아마 찬성 의견이 지금 나오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시장님께서도 방금 말씀하신 것처럼 시민들의 10명 중의 8명이 소음에 대한 지금 심각성을 인식을 하고 있고요. 그렇다면 이게 근거 없는 이야기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저희 가까운 곳에 광주에 군공항이 있었고. 또 2024년도에 광주전남연구원, 이건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저희가 전혀 뭐가 어떻게 될지를 예측할 수 없는 거기 때문에 광주연구원에서 발표한 시설 규모로 보면 지금 광주 군공항이 8.2㎢입니다. 그래서 248만 평 정도 되는데 새로 짓는 군공항은 15.3㎢, 463만 평 정도 규모고요. 그래서 현재 군공항보다 2배 정도 규모로 지어질 것 같고 지금 망운면 전체 면적이 19.12㎢면 거의 망운면 전체를 해당하는 이런 군공항으로 계획을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실은 이게 또 규모가 크다 그래서 소음이 많냐. 이 문제는 저는 아니라고 보고요. 또 이게 주거밀집지역이냐 뭐냐에 따라서 조금 차이는 있을 것 같은데 광주보다는 훨씬 규모가 크게 올 것으로 예상이 된다는 거고요. 무안공항에서 국제공항에서 목포의 위치를 봤을 때는 직선으로 하면 반경 23km 정도로 볼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신안군 대책위에서 이번에 제기한 군용기 이착륙, 비행훈련 선회구역은 공항 반경 10km에서 20km 이상의 공중영역을 필요로 한다고 했고요. 이 기준을 그대로 적용한다면 압해도 전역과 지도읍, 목포시가 소음 영향권에 들어갈 수밖에 없다라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국내 공항별로 평균 소음도. 이거는 환경부에서 2011년에 발표한 자료입니다. 거기 보면 87웨이클 해서 광주가 전체 공항에서 가장 높게 나타나고 있고요. 2014년과 2018년도에도 15년 간 전국 14개 공항 주변 평균 소음도에서도 82.5웨이클로 해서 전국 1위로 지금 계속해서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방음공사를 하더라도 크게 이걸 개선을 할 수 없는 이런 상황이고요. 95웨이클 이상으로 올라갔을 때는 거의 방음효과가 30%밖에 안 난다는 이런 상황입니다. 그래서 결국 가축과 어장, 갯벌, 재산권 행사의 문제점, 군용기 비행사고 등 많은 피해가 지금 예상이 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뭐가 올지를 지금 저희가 전혀 알 수가 없다라는 거죠. 항로도 마찬가지고 어떤 규모로 올 건지 그다음에 활주로는 또 어떻게 나질지 이런 걸 전혀 알 수 없는 상황입니다. 그래서 결국 여기에 무엇이 오냐에 따라서 사고 위험이라든가 시민들의 불편도는 계속 또 증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인데요. 이것도 광주연구원 자료입니다. 광주 군공항 소음 관련해서는 면적 40.21㎢, 피해 인구가 5만 4,000여 명, 보상액이 166억원이었습니다. 광주 같은 경우는 광산구에 군공항이 들어서고 나서 실은 도시가 확장된 형태다 보니까 아마도 그 이후에 보상을 받는 분들도 굉장히 많이 늘어났을 것 같은데요. 광주연구원에서 조사한 무안 이전했을 때 소음 영향 예상 지역입니다. 여기는 일부 현경하고 망운, 운남면 일부를 지금 포함을 하고 있고요. 그래서 소음 영향권도 19㎢, 무안군 전체 면적의 4.2% 정도 될 것이다라고 광주연구원에서 자료를 내놨습니다. 그래서 결국 이 이야기는 현재는 소음 영향권을 무안군으로 한계를 짓고 있는 상황을 우리가 볼 수 있고요. 우리가 어쨌든 소음피해, 뭐 갯벌도 마찬가지일 것 같습니다만 다양하게 살펴봐야 되는데 예측이 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에 대해서 우리가 대응은 필요하다라고 생각을 하거든요. 이런 면에서 봤을 때 좀 목포가 늦지 않냐. 물론 의대라는 아주 굉장히 큰 현안이 있었기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생각하는데요. 신안군은 지금, 이건 의회에서 조례 제정을 했고요. 또 8월 20일날 주민대책위가 구성이 됐습니다. 그리고 신안군에서도 사전 실태조사와 연구용역을 추진을 하겠다. 이렇게 발표를 했고요. 함평군에서도 8월 7일날 함평군수께서 당시에 국토부장관과 관련해서 국회의원 등을 방문을 해서 함평 지역의 대책을 요구를 했어요. 그리고 정부 차원의 어떤 선제적인 피해대책이 필요하다. 그리고 탄약고가 같이 올 수밖에 없잖아요, 이번에. 그래서 그 문제에 대해서도 해결해 주라. 뭐 이런, 활주로를 증설해 주라는 등 이런 구체적인 요구를 한 것이 사실입니다. 시장님은 이것 보시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목포 대응과 관련해서.
예, 알겠습니다. 그래서 본 의원이 시정질문을 준비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첫 번째가 있습니다. 이 관련해서 답변부서를 어떻게 할까요? 했을 때 이 소음입니다. 내지는 서남권 연계사업으로 해결해야 되는 것 아닙니까? 내지는 전략적으로 대응해야 되지 않습니까?에 따라서 부서가 다 달라져가지고 어디 부서를 지정을 해야 될지 굉장히 어려운 상황이었거든요. 그래서 아마 지정이 정확히 됐다라면 시장님께서 처음부터 이렇게 나오셔서 답변하지 않으셔도 됐을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시장님께서 생각하실 때 목포시에 이와 관련한 대응부서는 어디라고 생각하시고, 이후에 집행부는 어떻게 대응을 해 나가겠다라는 의견이 있으시면 말씀해 주십시오.
예, 어쨌든 부서 이게 지금 명확하지 않다보니까,
의원님들께서도 굉장히 지금 관심을 많이 가지고 이 문제를 바라보고 있고요. 시장님께서 오늘 시정질문 이후로 그걸 말끔하게 정리를 해서 목포시에서 대응을 잘할 수 있도록 해 주시기 바랍니다. 다음, 시민 설문 이어서 말씀을 잠깐 드리겠습니다. 이게 갈등이 예상이 되는 상황이잖아요. 경제는 좀 빼고 넘어가겠습니다. 갈등을 해결하는 데에 있어서 필요한 조치와 관련된 것입니다. 서남권 상생발전을 위한 대규모 경제적 인센티브가 필요하다라는 이야기고요. 30.1% 정도가 그렇게 답변을 했습니다. 그리고 주민대상 투명한 정보공개, 공청회, 토론회 활성화가 26.9% 정도 됩니다. 소음피해 주민에 대한 확실하고 실질적인 보상안, 정부가 직접 나서서 중재를 해주라. 기타 의견은 오지 말라는 의견입니다, 기타 의견은. 그래서 이렇게 조사가 됐고요. 그러면 목포시가 정부에게 가장 먼저 요구해야 될 것은 무엇입니까라고 했을 때 피해보상 지원 강화가, 이건 주관식이어서 시민들께서 직접 쓰신 것입니다. 피해보상 지원 강화가 38.6%, 피해 범위를 신안, 목포까지 포함을 해야 된다라는 게 25.3%입니다. 그리고 시장님께서 잘 아시겠습니다만 학교가 지금 소음 보상 이런 지역 안에 포함이 안 되잖아요. 그래서 목포에 원체 또 학교가 많이 있다보니까 학교를 소음 지원대상에 포함을 시켜주라. 그다음에 군 소음법 개정. 이건 85웨이클 이하는 또 지원이 안 되기 때문에 그런 요구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환경 소음 영향평가 범위를 확대해서 목포까지 포함시켜주라는 이야기고요. 이전 주변 지역으로 지정을 해 주라. 이런 요구가 있었습니다. 이건 시민들의 요구를 간단하게 말씀을 드렸고요. 혹시 시민들의 요구 보시면서 시장님께서 고민하신 지점이 있으십니까?
예, 시장님께서 잘 말씀을 해 주셨는데요. 주민투표 같은 경우는 특별법에서 이전 부지 선정계획 공고 이전 후보지. 지금 무안이죠? 그래서 자치단체장에게 주민투표를 요구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지금 목포나 인근 지역은 포함이 안 돼 있는 거고요. 2조(정의)에 보면 방금 말씀하신 것처럼 “이전 부지 주변 지역. 이전 부지가 소재한 시군구 및 이와 연접한 소음피해지역 시군구 중에서 군공항 이전사업 지원위원회가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결정하고 국방부장관이 이를 고시한다.” 그래서 이거는 저희가 추진을 분명히 저는 해야 된다라는 말씀을 드립니다. 이게 좀 저는 부조화스럽다고 생각을 하는 게, 실제 군공항 그러니까 비행기 이거는 행정구역을 넘어서서 다니잖아요. 소음도 막 피해를 주면서.
하지만 실제 의사표시를 할 수 있는 것은 행정구역으로 이게 규정이 돼 있다보니까 굉장히 부조화스러운 상황이고,
특별시죠? 예.
예, 꼭 그렇게 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다음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이번에 전남권 신설 의대 선정과정에서 주민들이 좀 초기대응. 결과가 나오고 나서 초기대응 관련한 의견이 있었습니다. 그건 이후에 시장님께서 하시기는 했습니다만 인근 지자체와 협력해서 이 문제를 공동대응했어야 되는 것 아니냐라는 이야기가 있었고요. 특히나 이게 숫자 때문에도 더 그랬을 것 같습니다. 의대 문제도 동부권에 우리가 수로 밀리는 것 아니냐. 이런 안타까운 심정이 저는 주민들한테 그렇게 반영이 됐다고 생각을 하거든요. 특히 요즘은 생활권이 행정구역하고 별도로 생활권이 좀 넓혀지고 있는 상황이고 이것을 또 법에서도, 광주전남특별시 거기 법에서도 광역 생활권이라든가 이런 것을 지정할 수 있게끔 돼 있고 지방자치법에도 특별자치 이런 것을 할 수 있게끔 돼 있습니다. 그래서 통합은 아니더라도 이러한 지역의 굵직한 현안사업 그리고 또 주민들이 필요한 교통이라든가 방금 문화 관련해서도 말씀을 잠깐 하셨습니다, 관광 관련해서도. 이런 걸 좀 연계가 필요하다라고 저도 생각을 하거든요. 그래서 시장님, 이 관련해서도 답을 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예, 말씀하십시오.
예, 시장님께서 오해 없으시라고 제가 다시 한번 말씀드립니다. 이전에 노력을 했냐 안 했냐 이 문제가 아니고요. 시민들이 보시기에 결과가 나온 이후로, 아마 내부 시의 또 시장님의 어떤 횡보에 대해서 다 알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결과가 나온 이후로 대응 관련해서 바로 인근 지자체하고 같이 좀 협력을, 대응을 했어야 되는 것 아니냐라는,
그런 안타까움이 있었다는 것을 저는 시민을 대변하는 시의원으로서 시장님께 전달을 해드립니다. 이거는 누군가한테 책임 전가 이런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저희 여기에 있는 모두의 책임이라고 생각하고요. 그런 면에서는 이 문제가 시민들께서 느끼기에, 서두에서도 잠깐 말씀드린 것처럼 서남권 홀대론 막 이렇게 하면서 저는 이러한 상황들에서 가장 고민이 되는 게 목포에 대한 희망을 잃고 시민들이 패배적으로 가는 것. 이게 저는 가장 우리가 고민해야 될 문제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런 측면에서 목포시가 명확하게 대응을 잘해주시고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부서 관련해서도 명확히 지정을 하고 집행부 내에서도 연계할 수 있게끔 잘 꾸려서 대응을 해 주시고요. 또 서남권 이쪽과도 공동대응 잘 준비해 주시고 정부 지원 대상에도 포함을 시켜서 목포시가, 아직 지금, 실은 이 문제는 예측이잖아요. 그리고 한번 결정이 되면 몇 십 년을 우리는 피해를 보고 살아야 되는 상황이잖아요. 그래서 이걸 빨리빨리 시민의 입장에서 ‘대응을 했구나’라는 것을 느낄 수 있게끔, 체감할 수 있게끔 그렇게 정책 추진을 해 주십시오.
예, 시장님, 기대하겠습니다. 고생하셨습니다. 자리로 돌아가십시오.
이번 시민 설문에서 한 시민은 목포시가 정부에 요구할 것을 이렇게 적었습니다. 환경평가의 정확한 자료를 토대로 설명회 개최. 즉 정확한 정보를 시민에게 공개해야 한다는 요구입니다. 망운면 일대라는 다섯 글자 속에는 사라질 마을과 축사, 매립될 수 있는 갯벌 그리고 소음이 닿을 수 있는 섬과 도시가 다 들어있습니다. 광주 군공항이 무안으로 이전해 올 경우 투표권조차 없는 목포시민은 앞으로 몇 십 년을 피해에 시달려야 할지 알 수 없습니다. 중앙정부와 전남광주통합특별시는 서남권 주민들이 투명한 정보공개 속에서 민주적 절차를 통해 자신의 의사를 결정할 수 있도록 망운면 일대라는 다섯 글자가 아닌 활주로의 위치와 부지의 위치 등 필요한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할 것을 촉구합니다. 이상 시정질문을 마치겠습니다. 긴 시간 경청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형완

이형완의장

최현주 의원님! 수고하셨습니다. 자리로 들어가시기 바랍니다. 이상으로 시정질문과 답변을 모두 마치겠습니다. 오늘 시정 전반에 대하여 심도 있는 질문과 대안을 제시해 주신 두 분 의원님과 성실히 시정질문에 임해주신 강성휘 시장님을 비롯한 관계 공무원 여러분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제3차 본회의는 내일 9월 23일 수요일 오전 10시에 개의하여 일반부의안건, 2025회계연도 결산 및 예비비 지출 승인의 건, 2026년도 제3회 추가경정예산안 등에 대한 의결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이상으로 제408회 목포시의회 2026년도 제1차 정례회 제2차 본회의를 마치겠습니다. 산회를 선포합니다.

11시 45분 산회

박수경출석의원

박용식 박효상 이정석 최환석 송선우 손혜원 이형완 정재훈 장국진 조성오 최현주 김호한 이동수 최원석 박용준 백동규 이정상 안하늘이 장가영 홍건숙
직원

무국직원출석사

의회사무국장 이정순 전문위원 한대희 김명환 이세영 의사팀장 조광운 행정주무관 김 설 속기주무관 노혜인 강지수

출처 전남 목포시의회 회의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