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특별자치도의회 5분자유발언
곽영승 의원 5분자유발언
지사님, 긴 시간 고생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교육감님께 여쭤볼 말씀은 제가 도민들께 드리는 말씀으로 대체하겠습니다.
도민들께 한 말씀 올리겠습니다. 도민 여러분은 도정이나 교육정책에 얼마나 많은 관심을 갖고 계십니까? 정책 결정은 지사나 교육감, 간부들에 의해 거의 대부분 결정됩니다.
과연 이들은 항상 현명한 결정을 내릴 만큼 진보된 지식과 기술, 전문적 식견이나 통찰력, 도민들에 대한 사랑, 무엇보다 빈곤층과 서민층에 대한 충분한 배려심을 간직하고 있을까요? 도민 여러분! 역사의 발전은 현명한 소수에 의해 성취되지 않습니다.
초인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른바 지도자라는 사람들이 하는 일은 여러분이 피운 꽃들을 끈으로 묶어 꽃다발로 만드는 일입니다. 끈으로 묶지 못하는 지도자들도 있습니다.
이들은 자신이 엘리트라는 편견에 사로잡혀 있을 수도 있습니다. 편견은 곰팡이처럼 우리 공동체의 삶을 좀먹습니다. 우리는 더 많이 가지려고 합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모든 사람의 필요를 충족하기에 충분한 재화가 있지만 탐욕을 채우기에는 충분하지 못합니다. 우리는 더 많이 가진 사람을 성공한 사람이라고 합니다. 이런 탐욕은 결국 절망을 낳게 됩니다.
절망은 불안, 불신, 두려움, 폭발을 낳습니다. 그 한 예가 학교 폭력, 왕따 학생들의 자살입니다. 도대체 이게 웬일입니까?
인간은 야망에도 잘 적응하고 따뜻한 배려에도 잘 적응합니다. 아이들은 자상한 보살핌을 받고 성장해야 남들을 자상하게 보살피게 됩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떻습니까?
도내에서만도 20~30만 명이 생활고에 허덕이고 있습니다. 밥을 굶고 돈이 없어 상급학교에 진학하지 못하고 절망을 안고 거리를 헤매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사회안전망에 구멍이 뚫리면 평안한 일상이 위협받습니다.
정치인들은 보편적 복지를 외치고 있습니다. 하나같이 보편적 복지를 외치고 있습니다. 보편적 복지가 무엇입니까?
빈곤층에서 부유층까지 일률적으로 똑같이 하자는 것입니다. 선별적 복지, 즉 빈곤층ㆍ서민층 등 사회적 약자에 대한 복지조차 제대로 못하고 있는 상태에서 부유층 복지까지 해야 한다고 아우성입니다. 복지, 누군들 싫겠습니까?
그러나 가난한 이웃을 못 본 체하는 보편적 복지는 빈곤층ㆍ서민층에게 돌아가야 할 돈으로 중산층ㆍ부유층의 표를 사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일어나십시오. 분노하십시오.
돌을 던지십시오. 우리가 하는 일 중 최악은 그저 괜찮은 척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불의를 확산시키고 영속시키는 것입니다.
아이들 무상급식으로 한 달에 4~5만 원, 1년에 고작해야 40만 원 정도 절감됩니다. 그러나 무상급식 한 끼당 식비 1,000원 정도 깎였습니다. 3,000원짜리 점심 먹던 아이들이 무상급식하면서 2,000원짜리 점심을 먹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질 낮은 식자재, 중국산 식자재까지 쓰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 공짜가 어디 있습니까? 결국 한 달에 4~5만 원 절감하는 대신 한창 자라나는 내 아이가 질 낮은 밥을 먹는 것입니다.
빈곤층ㆍ서민층의 복지예산이 줄게 됩니다. 도민 여러분, 이제는 개천에서 절대로 용이 나지 않습니다. 계층이 교육을 통해 세습되고 교육은 전적으로 재력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한 번 부자는 영원한 부자, 한 번 빈자는 영원한 빈자가 되고 있습니다. 이제 왕후장상이 따로 있는 세상이 되어 버렸습니다. 이런 세상을 그저 괜찮다고만 하실 겁니까?
화를 내십시오. 화를 내십시오. 분노는 살아있다는 증거입니다.
여러분, 사람의 능력은 놀랄 만큼 평등합니다. 그러나 우리 사회가 왕후장상의 씨를 분리해서 소수만을 엘리트로, 정책 결정권자로 만들어 버립니다. 부의 불평등 때문입니다.
과거에 비해 더 많은 교육이 제공되지만 불평등하게 배분되고 계층을 영속화시키고 있습니다. 이런 시가 있습니다. “월요일의 아이는 무식하지, 화요일의 아이는 대학에 못 갈 테고, 수요일의 아이는 단순하기 그지없고, 목요일의 아이는 갈 길이 멀다네.
금요일의 아이는 반성할 줄 모르고, 토요일의 아이는 상황을 파악하네. 하지만 일요일의 아이는 통찰력이 있어 유명해지네.” OECD가 교육에 바치는 송시라고 합니다. 우리 아이들 중 단 2%만이 일요일의 아이라고 합니다.
나머지 대부분은 중ㆍ고등학교 때 실패자라는 라벨이 붙어서 평생 떼지 못한다고 합니다. OECD의 분석입니다. ‘부자 되세요.
대박 나세요.’ 이런 천박한 인사만이 풍미하고 ‘나만 아니면 돼.’라고 외쳐대는 삭막한 시대에 전정한 교육이 가능하겠습니까? 여러분이 빈곤층ㆍ서민층의 분노에 공분할 때 정책 결정권자들이 약자의 아픔에 동참할 때 진정한 교육이 이루어지고 역사도 발전할 것입니다. 세상은 아름답기도 하고 참혹하기도 합니다.
약자와 연대하고 이기심을 줄이고 ‘더 많게’ 보다 ‘더 좋게’를 외칠 때 세상은 아름다워질 것입니다. 경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