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희의원
경주시의회 문화행정위원회 부위원장 김영희 의원입니다. 먼저 본 의원에게 시정 질문의 기회를 주신 박승직 의장님과 동료 의원 여러분께 감사를 드립니다. 또한 시정을 위하여 항상 애쓰시는 최양식 시장님과 공무원 여러분들께도 감사를 드립니다. 아울러 오늘 의회 방청석에 자리를 함께 해 주시는 모든 분들께도 심심한 감사를 드립니다. 첫 번째 질문입니다. 지금 경주 도심의 중심 상가에서는 걱정이 많습니다. 수 백 명의 인원이 상주하면서 그나마 상가 활성에 많은 도움을 주고 있는 경찰서가 조만간 이전하기 때문입니다. 문화재 보호구역의 주거환경 개선과 정비라는 취지로 쪽샘 지역을 비롯한 노동 노서리 고분군 지역 등 주변 지역의 상가와 주택이 철거되고, 타 지역으로 이주민이 이전이 된 이후로 침체 되어 있는 도심이 더욱더 침체될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지요. 도심이 제 기능을 유지하려면 도심 자체 내에서 스스로 소비와 생산이 활발히 이루어져야만 가능합니다. 말하자면 도심 지역 주민들의 소비지출을 최대한 도심 내에서 이루어지게 해야 하며, 외부의 소비는 최대한 도심 내로 끌어 들여야 하는 것입니다. 경제적으로 침체된 도심의 활성화를 위해서는 도심 내에 새로운 소비의 원천을 만들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 현재 우리 시는 청사 공간이 협소하여 왕경사업본부를 비롯한 여러 기관이 청사 외부에 산재해 있습니다. 경찰서가 이전하면 이 기회에 경찰서 부지를 리모델링 또는 신축하여 제2청사로 사용하여 청사 외부에 흩어져 있는 여러 기관들, 즉 왕경사업본부, 맑은물사업소, 예산작업장, 설계직원사무소, 시설관리공단 등을 한 곳으로 모아서 직원들이 상주한다면, 도심 내에 새로운 소비의 원천을 만드는 효과로 인하여 침체되어 가는 도심에 조금이라도 활력을 불어넣는 일석이조의 좋은 효과가 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은 서면 답변으로 갈음하도록 하겠습니다. 두 번째 질문입니다. 조선조 말엽 가무악으로 활동하던 경주의 명기 유난곡 여사가 1940년 임종 직전에 일평생 모은 전 재산인 전답 3만평을 육영사업과 국악진흥사업에 사용되기를 원하며, 그 당시 경주읍에 기증하였습니다. 이후 유난곡 여사의 유지대로 재단법인 난곡보육재단이 창립되어 많은 성과를 내었습니다. 그러나 이 재단은 1945년 해방직후 해체되었고, 재산관리권은 다시 경주읍으로 넘어갔으며, 1955년 동도국악원의 설립 및 활동의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자신의 전 재산을 경주읍에 기부하면서 국악진흥에 기여하려 했던 유난곡 여사의 유지가 없었더라면 동도국악원의 활동이 어려웠을 것이라고 합니다. 경주시립국악원의 전신인 동도국악원은 일제강점기 때 활약한 풍류인들의 문화공간이 되었고, 전통 음악의 명맥을 유지하는 기관이 되었습니다. 오늘날 경주의 장월중선 명창과 같은 경상북도 무형문화재 국악 분야 예능 보유자가 존재하는 데에는 유난곡 여사와 동도국악원 단원들의 공로와 활동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1990년까지 50년이 지나면서 유난곡 여사의 재산은 많은 성과도 있었지만 가슴 아픈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거의 다 사라졌으며, 1984년 남은 재산은 제답 2두락과 현곡면의 묘지 800여 평, 그리고 서라벌 국악원 전세금 1,000만 원이 전부였다고 합니다. 이것이 1990년 당시의 재산 규모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2001년 이후 지금 현재까지 현곡면의 임야 800여 평만 소유한 채로 난곡보육재단은 폐업 상태이며,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 하고 있습니다. 지금이라도 난곡보육재단이 보유한 땅을 재단 소유주와 잘 협의하시어 적극 활용하여 힘겨웠던 일제치하에서 평생 어렵게 모은 돈을 육영사업과 국악진흥을 위해 전 재산을 기부한 참다운 예인인 유난곡 여사의 숭고한 뜻을 영원히 기억하고, 그 뜻을 높이 받들어 이 시대 기부문화의 귀감이 되는 분으로 존경받을 수 있도록 유난곡 상을 제정하여, 우리 시에서 개최되는 전국 국악대재전 등 여러 국악 관련 행사 시에 민요 부분, 무용 부분, 가야금, 병창 등 시상 부문에 활용하시어 국악 예능인이라면 누구나 가장 받고 싶어 하는 훌륭한 상으로 활용해 주실 의향이 있으신지요. 세 번째 질문입니다. 지금 시 청사 북쪽 동천동과 고속터미널 동쪽 노서동에는 일본 지바현 후 나바시 시에서 식당업을 하며 평생을 힘들게 모은 전 재산을 1995년 고향인 경주시에 기부한 구순자 여사의 유증자산이 있습니다. 행정감사를 할 때까지만 해도 동천동 주택은 대문 위에 여기저기 거미줄이 걸려 있었고 대문 앞부터 마당 전체에는 잡초가 무성해 있었습니다. 행정감사가 끝나고 시정질문을 제출한 며칠 후 무성해 있던 잡초가 제거된 것을 보았습니다. 최근 며칠 동안 잡초가 무성한 마당과 대문 앞을 오가며, 작고하신 구순자 여사를 생각하면서 참으로 애틋하고 무거웠던 본 의원의 마음이 조금은 가벼워짐을 느꼈습니다. 구순자 여사의 유증자산인 동천동 주택은 문화예술을 위해 사용해 달라는 고인의 뜻과는 다르게 지금 시 청사가 협소하다는 이유로 1995년 이후 20년이 넘도록 경주시가 임대료도 내지 않고 경주시 예산작업장과 설계직원들의 사무실로 사용하고 있으며, 심지어 예산작업장의 가구비용과 공공요금까지도 문화예술진흥을 위해 사용되어야 할 구순자 여사의 유증자산의 임대료로 지불되고 있습니다. 노서동 상가는 연간 수천 만 원의 수익이 나오고 있음에도 신라문화재행사에 얼마간 사용되는 것 외에는 그 사용처 어디에도 구순자 여사의 이름은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1995년 이후 지금까지 20여년이 지나는 동안 수십 명의 많은 공무원들이 문화예술과를 거쳐 갔지만 그 누구도 이 사실이 부당하다는 것을 깨닫지 못 하고 눈여겨 보지도 않았습니다. 고인이 계신 구순자 여사께서 이 사실을 아신다면 얼마나 애통하고 통탄해 하실 일이겠습니까? 22년 전 그 당시에 평생 모은 전 재산을 자식에게 물려주지 못 하고 경주시에게 기증해야만 했던 구순자 여사의 사연은 또 그 얼마나 절절하고 안타까운 사연이었겠습니까? 지금이라도 경주시가 보유한 유증자산은 유증자산 특별회계를 만들어 따로 관리하고, 그 수익이 얼마나 되든 간에 기부자의 이름으로 성실히 집행하고 경주시민들에게 정확히 보고되어야 할 것이며, 공무원을 비롯한 시청에 출입하는 시민들, 누구나 쉽게 알 수 있도록 유증자산의 사용처를 홍보게시하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작고하신 구순자 여사께서 민간에게 맡기지 않고 경주시에 전 재산을 맡기신 뜻은 경주시가 구순자 여사의 뜻을 가장 잘 이해하고 보람 있게 잘 관리해 줄 것이라는 태산과 같은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겠습니까? 차별 많던 일본에서 힘들게 돈을 모아 고향 경주시에 문화예술을 위해 사용해 달라는 뜻으로 전 재산을 기부한 재일교포 구순자 여사의 그 절절한 뜻을 영원히 기억하고 그 뜻을 높이 받들어 이 시대의 기부문화의 귀감이 되는 분으로 존경받을 수 있도록 경주시 재일교포 구순자 여사 유증자산 관리 및 운영 규정을 개정하시고, 구순자 상을 제정하여 우리시에서 개최되는 전국국악대제전 등 여러 국악 관련 행사 시 민요 부문, 무용 부문, 가야금 병창 등 시상 부문의 상금에 활용하시어 국악 예능인이라면 누구나 가장 받고 싶어 하는 훌륭한 상으로 자리매김해 주실 것을 간절히 제안합니다. 시장님의 견해를 말씀해 주십시오. 이상 본 의원의 세 가지 시정질문을 모두 마치겠습니다. 경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