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영구청장
신성진의원 질의에 답변하겠습니다. 협치를 어떻게 잘 구현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신데요. 협치라는 것이 협동을 통해서 어떤 다스린다는 이런 뜻이겠지요. 그런데 서울시도 혁신과 협치를 민선6기에 주요방향으로 제시하고 있고 지난 4 13 총선 이후에 우리 정부 청와대에서도 협치를 상당히 중요한 과제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정치나 행정이나 어떤 분야에서도 상호 협력이 가장 기본적인 전제가 되지 않겠습니까? 협치를 그만큼 강조한다는 얘기는 필요성이 그만큼 중대됐다는 얘기일 수도 있고 역으로 소통이 안 된다고 이렇게 볼 수도 있겠지요. 그러니까 뭔가 협력하는 분위기가 조성이 되어야 사회도 발전하고 정치도 발전하는 것인데 우리 지역만 가지고 얘기하자면 지난 민선 5기 6기 동안 협치에 싹을 틔운 시간들이었다고 봅니다. 신성진의원님께서도 지적하신 바와 같이 주민참여 예산제도나 각종 구 정책 사업에 주민들의 의견을 반드시 듣도록 하거나 주민제안 사업으로 여러 가지 예산을 편성하는 그런 것들이 있었지요. 은평누리축제같은 경우에 이전에는 관청이 모든 것을 다 했다면 은평누리축제는 주민들이 기획하고 또 주민들이 참여하고 또 주민들이 직접 누리는 그런 축제로 2010년도부터 시작해서 지금까지 왔지요. 그러니까 민간이 했을 때에 민간이 갖고 있는 자율성 역동성 또 여러 가지 지식과 정보에 활용 또 신나는 어떤 분위기들이 단순 경제적 효과의 측면에서도 투입 대비 효과가 상당히 높다 누리축제를 지방에 큰 축제들에 비하면 예산이 1/10밖에 안 되거든요. 2억 플러스 마이너스되는 예산가지고 엄청난 많은 주민들이 함께 할 수 있었다는 것은 대단히 높은 효율의 증거라고 볼 수 있습니다. 아까 신성진의원께서 마을공동체 수백 개가 만들어진 것도 하나의 협치의 사례라고 말씀해 주셨고 요즘 재난안전 여름에 장마를 대비한 그런 것도 민간에 역량을 합해서 재난안전 거버넌스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자동차 공업사를 하신다거나 난방협회 그런데 계시는 전문가들이 그런 분들이 아무래도 펌프라든가 이런 것을 잘다루지 않습니까. 그런 분들을 우리 재난안전 거버넌스에 참여시켜서 우리들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일에 주민과 공무원이 함께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도시를 변화시키고 계획할 때에 전문가들이 도면을 그리고 그들이 설계하고 공사를 합니다마는 산골마을이나 산새마을 이런 케이스에서 보여지듯이 마을의 설계도를 마을 주민들이 직접 만들고 있습니다. 그리고 도시텃밭도 이것도 향림도시텃밭이 지금 오픈한지 2년 정도 됐는데 거기도 주민들 주도로 협동조합이 운영하고 있고 그리고 교육혁신 사업 교육혁신 지구 사업도 마을에 교육적으로 우수한 자원을 가진 주민들이 협동조합을 만들어서 아이들의 방과후 학습을 맡아서 운영하고 있습니다. 복지부분은 어떻습니까. 찾아가는 동 복지주민센터라고 해서 찾 동을 서울시가 7월 18일부터 전면화하고 있습니다마는 사실 전례가 되고 있는 사업이 우리 구가 추진했던 복지두레 사업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기초생활수급자나 연금 등을 지원하고 또 그것을 혜택을 받지 못하는 일명 폐지줍는 할머니로 얘기되는 사각지대에 있는 분들을 민과 관이 서로 협력해서 재능이 있는 사람은 재능을 내고 또 돈이 있는 사람은 돈을 내고 그렇게 해서 어려운 사람을 구제하는 그 사례가 복지두레사업입니다. 이런 것도 하나의 협치의 사례였다 구산동 도서관 마을을 비롯해서 그야말로 민간과 시민의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모이면 엄청난 기적을 만들 수도 있다고 대내에 과시한 것이 구산동 도서관 마을협동조합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다소 이론적인 얘기를 하자면 “대중의 지혜”라는 책이 있습니다. 제임스 서로위키라는 사람이 쓴 것인데 어떤 우시장 소 파는 소시장에서 황소 한마리를 큰소를 갖다놓고 수백명의 사람들에게 이 소의 몸무게가 정확히 몇키로인지 물어봅니다. 예를 들면 덩치가 좋으신 성흠제의원, 채근배의원 혹은 문근식의원이 제가 보았을 때 체중이 80키로 내외인 것 같은데 사람이 많이 모여서 각각 사람의 체중을 적어서 내면 정확히 맞추는 사람이 많지는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통계를 내면 200명이 통계를 내잖아요. 그러면 거의 소의 몸무게 근사치에 답이 나온다 대중의 집단 지혜라는 겁니다. 예전에는 선도 국가 개발국가로 나갈 때에는 시간이 없고 자원이 부족한데 최대한 선택과 집중을 하기 위해서는 엘리트를 양성해가지고 공무원으로 만들어 놓고 과제를 주고 빠른 시간 안에 목표 달성을 촉구하지요. 그러면 어떤 성과가 이루어지던 시대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90년대 이후의 시대는 그야말로 저성장 또 아주 가파른 성장 구조에서 완만한 성장으로 이런 식으로 성격이 바뀌었고 또 엄청난 경제의 규모가 형성되었고 사회적으로 아주 계층적으로나 세대적으로나 지역적으로나 갈등이 많은 갈등사회로 들어와 있습니다. 이전에는 한 두사람이 시대적인 커다란 시대적 화두를 제시하고 따라 오시오 하면 따라 갔는데 요즘은 택도 없는 시대가 됐어요. 대중이 전문가가 된 시대이고 인터넷이나 각종 정보가 개방되어 있어서 국민 누구나 어떤 각자가 갖고 있는 철학이나 판단기준을 가지고 있고 또 그것을 적극적으로 표출하는 시대가 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협치는 해야 되는 일이 아니고 우리가 갖고 있는 행정에 있어서의 자산이 매우 많이 떨어져 있지 않습니까. 고령화, 저출산, 세금도 잘 안 걷히고 그런 상황 하에서 우리가 갖고 있는 작은 재원으로도 최대의 효과를 만들려면 더 많은 사람의 참여와 더 많은 사람의 지식과 아이디어가 모여서 하나의 사업 구상을 하는 것이 훨씬 더 투입대비 효율이 높고 오래 가고 안정성도 있고 그렇다 그렇기 때문에 협치라는 것은 해도 그만 안해도 그만이 아니라 이 시대에 생존법이라고 제가 강하게 역설합니다. 그래서 우리 구는 서울시도 권고하고 있습니다마는 협치를 보다 높은 수준에서 끌어올리기 위해서 협치관련 전담 부서를 신설할 계획이고 예를 들면 지금 희망마을담당관이 있습니다마는 희망마을담당관을 협치센터 내지는 협치과 이런 식으로 만들고요. 협치위원회를 민과 관 또 다양한 주민들이 참여할 수 있는 협치위원회를 둘 계획입니다. 그리고 협치조정관을 신설해서 여러 분야에서 걸쳐져 있는 여러 갈등 요인도 그런 것도 사전에 해소하고 또 시민과 공무원들 간에 간극이 많이 있습니다. 언어적으로도 상당한 간극이 있고 또 생각하는 습관이나 문화에도 상당한 차이가 있는데 간극을 좁힐 수 있는 시민주도의 공무원교육 또 공무원이 공무원의 입장을 시민들에게 설명하거나 이해를 구하는 쌍방향의 소통구조를 만들 계획입니다. 협치가 학문적으로 논의가 되는 분야가 아니라 일상 생활에서 재미있고 마치 놀이와 같이 신선하면서 언어적으로도 같은 언어를 쓰는 문화적으로 다양성 속에 일치가 될 수 있는 그런 방향으로 나아가야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듭니다. 협치가 정말 중요합니다. 다음에 한국문화관에 대해서 신성진의원께서 주민들의 바람과 함께 질문을 해 주셨습니다. 28만명의 은평구민들이 서명을 해 주셨습니다. 우리 구민의 절반 이상이 한국문화관 유치에 지지서명을 해 주셨다 너무도 감사하고 고마운 일입니다. 한국문화관이 은평구에 와야 된다 이 얘기는 강릉시장은 강릉에 와야 하는 이유 대구시장은 대구에 와야 하는 이유가 수십가지씩 있을 겁니다. 우리나라는 삼천리 금수강산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근래 백년에 역사를 놓고 보면 얼마나 많은 아픔이 있었습니다. 일제의 식민지와 동존상잔의 비극, 독재, 산업화, 민주화, 또 IMF 근 현대의 격랑을 헤쳐 오면서 문학이 싹트지 않을 수 없는 그런 환경을 갖고 있는 것이 우리나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느 동네를 가든 다 문학과 연관되어 있는 지역이다 그래서 대한민국 어디에 문학관이 들어서도 이상할 것이 없습니다. 솔직히 그것도 지방같은 경우는 지역균형 발전 차원에서 지방에 와야 된다 이렇게 얘기하고 서울은 허브가 튼튼해야 네트웍이 잘 된다 그래서 서울에 와야 된다고 주장하고 참 이랬는데 왜 작년에 문화체육부가 용역을 해서 주로 용역에 대상이 서울이었습니다. 서울에 있는 자치구 10군데를 상대로 작년에 평가해서 은평구가 압도적 1위를 했죠. 왜 그렇게 경쟁방식이 아니라 선택을 했는가, 그것은 이렇습니다. 상징성, 확장성, 연계성 모든 면에서 은평구가 우수하기 때문입니다. 상징성이라고 하면 근대문화가 싹튼 데가 대구도 상징성이 있고 군산도 상징성이 있고 인천도 상징성이 있습니다. 문학은 식민지시대, 남북분단, 문학이 지향하는 바는 통일, 얼마나 많은 작가들이 6.25때 납북되거나 여러 사건으로 희생됐습니까? 지식인들이 다 죽었어요. 정지용 시인만 해도 보도연맹 어쩔 수 없이 가입했고 그 당시 보도연맹으로 희생 당한 지식인들이 수십만입니다. 일각에서는 정지용 시인도 보도연맹 사건으로 희생된 것이 아니냐 이런 주장도 있는 것이 사실이고 그러나 또 다른 증언에 따르면 6.25때 이북 측에 납북이 되어서 끌려가시다가 희생됐다, 평양 감옥에 갇혔다 희생됐다, 이런 얘기도 있습니다. 지식인들이 문인이었고 작가들이었기 때문에 참 많은 희생을 당했고 일제 강점기 때도 얼마나 많은 시인과 작가들이 고문을 당하고 죽임을 당했습니까? 그런데 그런 분단과 일제의 식민지 이런 것을 뛰어 넘어서 우리가 통일을 지향하는 바인데 통일이라는 측면에서 바라봤을 때 우리 은평구가 상당히 상징성이 매우 높습니다. 일단 양천리라는 지명이 있듯이 의주로 천리, 부산으로 천리 그래서 양쪽으로 천리여서 통일이 되었을 때 한반도를 관통하는 도로에 정 중앙에 위치하고 있는 데가 바로 은평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문학이 지향하는 바가 남북이 갈라져서 근현대 세월 속에서 얼마나 많은 피눈물을 흘렸는가 그것을 극복한다는 차원에서 통일지향성의 상징성이 있는 지역이다, 일단 확장성을 생각할 수 있겠습니다. 한강 맨부커상에 한강, 우리 문학이 세계로 널리 이름을 알린 계기가 되요. 우리 문인들이 위대한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마는 아직까지 노벨문학상이 없습니다. 우리 문학이 세계로 뻗어나가고 더 많은 한강과 같은 작가들이 나올려면 세계인들이 우리의 문학을 가까운 곳에서 편하게 볼 수 있어야 됩니다. 그게 인천공항에서 수색으로 신공항철도가 연계되어 있고, 또 인천공항에서 바로 기자촌으로 올 수 있는 도로가 있고 서울로 들어 오는 접근성이 가장 좋은 곳이 은평구다, 그래서 은평구가 되어야 한다, 그 다음에 국립미술관이나 박물관이나 사대문 안에 고궁이라든가 여러 가지 역사문화와의 연계성도 매우 우수한 측면이 있고 옆에 진관사, 한글창제 관련 비밀독서당이 있었던 진관사, 한옥마을, 한문화특구, 고전번역원 우리 문화의 모든 것이 진관동 북한산 일대에 들어 옵니다. 고구려 역사를 다루는 동북아역사재단과 협약을 체결했고 거기 들어올 겁니다. 고려시대의 삼천사, 세종대왕과 연관되어 있고 집편전 독서당이 있었고 한글창제 비밀기지로 알려져 있는 진관사, 조선시대죠. 일제시대 때 백초월 스님의 태극기, 그리고 조선왕조실록이나 승정원일기 등을 번역하는 고전번역원, 그것은 고전문학이라고 할 수 있겠죠. 한국문화관이 들어 온다면 근현대문화관을 얘기할 수 있겠고, 앞으로 기독교역사관 국립사업인데 그것도 유치하고자 협상 중에 있습니다. 불교문화인 진관사, 삼천사, 수국사, 기독교 문화, 유교문화, 한옥이나 한문화, 다 은평구의 문화와 연관된 지역이기 때문에 여기에 들어온다면 서울의 문화창조에 밑거름이 될 것이고 세종시로 행정기능이 상당부분 수도기능이 그쪽으로 옮겼지 않습니까? 국회나 청와대라든가 행정이 그쪽으로 옮겨가는 문제가 정치권에서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마는 수도서울 경제적 집중은 다소 지방으로 이전하더라도 문화적 수도로서의 기능은 더욱 확충되어야 한다, 문화가 꽃피지 않고서 수도서울은 더 이상 미래가 없다, 그런 차원으로 전략적 접근을 하고 있다 그런 말씀을 드립니다. 기자촌이 우리 주민들께도 제가 말씀을 드립니다마는 세계사에 기자마을이라는 것이 없습니다. 세계적으로 유일하고 최초로 만들어진 것이 은평구에 있는 기자촌입니다. 기자촌 출신으로 배출한 많은 유명인들이 계십니다. 국회의장이 두분이시고 장관도 여러명이구요, 각 언론사의 근현대의 민주화, 산업화의 현장에서 엄청난 필력을 자랑했던 명기자분들이 거기에 계셨습니다. 지금도 활동하고 계시구요. 얼마전에 기자촌 홈커밍데이라는 것을 했습니다. 100명 가까운 원로기자, 퇴직하신 기자분들이 오랜만에 기자촌에 모여서 기자촌 기념비도 만들고 또 여러 이야기도 나누고 했었습니다. 거기에 참여한 어떤 분이신데 KBS기자를 하셨던 분인데 나중에서야 알았습니다. 그분이 근래에 돌아가셨어요. 돌아가시기 전에 기자촌 홈커밍데이를 하는데 우리과에 직원들한테 전화를 해서 이런 저런 조언을 하고 자기가 꼭 가고 싶다고 오겠다고 약속도 하시고 그랬는데 돌아가셨습니다. 홈커밍데이 행사에 못 오시고. 제가 그 소식을 늦게 듣고 장례식장에 갔더니 돌아가시게 된 배경이 말기암이셨다고 해요. 말기암으로 사실 생사에 갈림길에 계셨던 분도 마지막 여망이 북한산 자락 기자촌에 기자정신을 이어받을 수 있는 문화관이 들어오면 좋겠다, 그런 뜻을 함께 했던 것이거든요. 저는 이런 것이 매우 소중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시설, 예산, 규모 그런 것을 처음에는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하다 보니까 문학이라는 것, 언론이라는 것, 이런 것은 정신이다 그 정신을 연결하고 배우가 잇도록 만드는 것은 우리가 추구하고자 하는 한국문화관 유치의 기본 정신이다, 그래서 우리 마을속으로 녹번동이면 정지용 생가의 터를 확인하고 표지판을 붙였죠. 산골마을이 산골고개 있지 않습니까! 은평구 들어 오는 정지용 시인이 쓴 녹번이라는 시에도 그 양반이 거기를 오갔던 장면이 나오잖아요. 논두렁이 나오고. 그래서 우리의 과거에 문인들이 거닐었던 길과 생가를 복원하는 것입니다. 숭실학교는 평양에 있었지만 남북이 갈라지면서 남쪽으로 내려와서 신사동에 터를 잡았죠. 신사동 숭실학교 아래에 신사동 공공도서관 사업이 설계가 끝났는데 거기에 생각을 해 보니 까 숭실학교를 나온 분들이 윤동주, 황순원, 김현승, 김동인, 장준하 선생이나 문익환 목사나 그런 분들의 문학작품을 숭실 신사동 공공도서관에 집중적으로 배치하는 문화도서관 계획, 이호철 길과 정지용 길과 백초월 길을 이번에 만들었잖아요. 우리 마을 속에 우리의 마음 속에 우리의 근현대의 아픔과 희노애락을 대변했던 위대한 작가들의 정신을 받아들일 수 있다면 그것이 곧 나는 문화관이다, 이렇게 생각합니다. 기왕 얘기가 나온 김에 한가지만 더 말씀드리겠습니다. 윤동주는 우리 근현대사에서 가장 안타까운 비운의 시인이지 않습니까! 훌륭한 시를 썼고 윤동주는 살아 생전에는 몇몇 언론사에 동시 이런 것을 기고한 것 빼고는 자기 시집을 내지 않았어요. 그리고 일본으로 유학을 갔다가 거기에서 희생을 당하게 되는데 희생당한 이후 자기 친구한테 맡겨놨던 자기가 쓴 시, 이런 것들을 모아서 시집을 발간한 첫 시가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입니다. 그 서문을 쓴 사람이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정지용 시인입니다. 정지용 시인과 윤동주는 만나지 못한 사이입니다. 훨씬 더 정지용 시인이 나이가 근 20살 더 많으시고 그런데 정지용 시인이 윤동주 시인에 대해서 정말 애석한 마음으로 서문을 썼는데 예를 들면 무릎을 꿇을 힘조차 없는 상황이다, 해방이 되었건만 해방직후의 우리의 상황이 너무도 힘들고 안타까운 시절이다, 그러면서 윤동주에 대해서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기는데 시인은 죽어서 시를 남기게 됐고 이 시를 보아하니 윤동주가 어떤 사람인지 알겠구나, 그러면서 윤동주는 살을 버리고 뼈를 택했다, 이런 말을 합니다. 그게 노자에 나오는 대목인데 살은 썩어 없어지잖아요. 뼈는 영원하지 않습니까! 윤동주는 자기의 신념과 지조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음으로써 일제로부터 희생을 당했습니다. 그래서 죽임 끝에 육신은 사라졌지만 그의 영혼, 골수는 끝까지 남아서 후대에 남을 것이다, 이런 요지의 서문을 썼는데 정지용의 서문을 썼던 시점이 제가 유추하건대 녹번동에 정지용씨가 살 때입니다. 왜냐 하면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가 나왔던 때가 그때하고 비슷한 때거든요. 이런 역사성을 저희가 몰랐습니다. 윤동주는 워낙 천재 시인이라 그런 시인이구나, 정지용은 향수라는 시를 지었던 데가 옥천이 고향이지 않습니까? 우리하고 무관한 사람인줄 알았더니 윤동주는 다녔던 학교가 숭실학교로 평양에서 내려와 있고 정지용은 녹번동에서 살다 납북되셨고 이런 것들을 보면 근대 100년 시문학의 위대한 두사람의 영혼이 교감하는 장소가 은평구다, 그리고 남북 분단에 희생된 많은 사람들을 위로하고 통일문학을 지향했던 위대한 두 소설가가 있습니다. 그게 “광장”을 쓴 최인훈 그리고 “타향”을 쓴 이호철, 두분 다 원산 출신이신데 분단 전쟁이후 남쪽으로 내려와서 두분 다 불광동에 터를 잡고 위대한 작품을 썼죠. 이런 현대사를 관통하는 정신과 연결되어 있는 것이 이호철, 최인훈입니다. 이호철 작가는 “타향”으로 데뷔를 합니다. 황순원의 소개로 문단에 데뷔하는데 타향이라는 것이 고향을 벗어난다는 얘기잖아요. 원산에서 혼자 남아있을 때 느낀 소감을 “타향”이라는 작품으로 데뷔하는데 그 어르신이 마지막 작품으로 선택하고자 하는 것이 귀향입니다. 그 귀향을 한국문화과 기자촌에 유치되면 거기서 쓰겠다 말씀하셨습니다. 타향으로 시작해서 귀향으로 끝나는 것은 우리의 100년의 역사를 대변하는 표현이다, 타향과 귀향, 분단 전쟁 이게 타향이고 귀향은 통일을 얘기합니다. 그래서 이런 맥락들을 우리 주민들이 우리 청소년들이 이해하고 배우고 그렇게 한다면 우리는 얼마든지 한국문화관을 유치할 지역이 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그 다음에 사회적경제 활성화에 대한 말씀을 하셨는데 지금 우리구가 서울시 자치구로는 몇번째 안됩니다마는 사회적 경제기금을 만들었고 사회적경제 관련조례도 제정해서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 당시에 작년에 이 기금을 조성할 때는 국회에서 논의되고 있었던 사회적경제기본법 그것이 원만히 통과될 거라는 기대하에 기금설치를 했었습니다. 사회적경제기본법이 통과가 되어야 우리가 조성한 30억 가지고는 융자할만한 이자도 제대로 안나오거든요. 그런데 기초단위에서 30억을 만약에 출연하면 광역이 거기에 대해서 매칭으로 또 투자하고 또 기초하고 광역이 모은 기금을 중앙정부가 또 거기에 대해서 매칭해서 투자하고 그런 식으로 하면 예를 들면 30억이 60억이 되고 60억이 120억이 될 수 있는 그런 어떤 매칭펀드방식의 지원이 돼야 기금으로서의 효용성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정치권에서 사회적경제기본법이 저는 새롭게 구성된 국회에서는 통과가 될 것이라고 믿습니다마는 아직까지는 짐작하기 어려운 그런 상황입니다. 사회적경제기본법이 반드시 제정이 돼야 될 것 같고 그전까지 이 기금을 가지고 이자로 융자를 해봤자 사실 큰 이익이 갈 수 없기 때문에 토론중에 있습니다. 뭐냐 하면 우리 지역상권을 활성화시키기 위해서 전통시장에 젊은 청년 상인들을 육성하자. 지금 대림시장에 이화여대가 지원해서 청년가게가 시범운영을 시작했지 않습니까? 그런데 연남동이라든가 또 홍대 여러 상권이 활발화된 그런 지역을 가보면 아주 젊은 쉐프들이 가게를 열어서 요리를 해서 팝니다. 그래서 지금 청소년들이 일자리문제로 많은 고통을 겪고 있는데 뭔가 자기만의 전문성을 키운 청년들을 발굴해서 우리의 전통시장, 지금 많이 침체되어 있는 전통시장 가게를 열도록 지원을 하자. 그리고 우리구에 사회적경제과에 청년팀을 신설했습니다. 그리고 서울혁신파크 안에 서울청년청이 들어와 있고 청년들의 어떤 사회참여나 권익증진, 일자리창출 그런 부분에 우리구 보다 조직적으로 시스템적으로 신경을 써야 되겠다라고 생각하고 있고 그런 차원에서 지역의 청년가게를 열고자 하는 그런 청년들을 공모를 해서 우리 시장 안에 가게를 얻어서 일정기간동안 임대료 없이 장사를 할 수 있도록 그렇게 하면 아마 청년가게 주변으로도 많은 소비자들이 올 수 있기 때문에 기존에 상인들한테도 부과적인효과가 있지 않을까 이렇게 기대하고 있습니다. 제가 다소 장황하게 말씀을 많이 한 이유는 아시지요? 우리가 뭔가 특히나 우리 구의원님들이 결의안을 통과를 시켜주셨지 않아요? 문학관. 정부가 한 일에 대해서 여러 지자체들이 정부가 결정도 못하고 뭐하는 거냐 이렇게 비난을 했습니다마는 저는 달리 보고 있습니다. 원래 정부가 공모나 경쟁방식으로 선정하면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신공항문제로 대구권하고 부산권이 엄청난 갈등이 있었지 않습니까? 이게 무슨 유치경쟁을 하면 안 됩니다. 그야말로 어디가 가장 적합한가를 문인 단체들이 5개 단체들이 있거든요. 문인들이 스스로 토론해서 문학이 크려면 어떻게 돼야 되는가? 네트워크를 확대하려면 허브가 어디가 돼야 되는가? 상징성이나 접근성이나 확장성이나 연계성은 어디가 좋은가를 문인들이 제일 잘 알거든요. 그렇게 전문가들 내지는 문인들한테 맡겼어야 할 일을 괜히 문화체육부가 공모로 경쟁을 확대함으로서 담당이 안 되는 상황이었거든요. 그리고 솔직히 지역안배 내지는 정치적 고려설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혹시나 다른 데 갈 뻔 했습니다. 큰 일 날 뻔 했어요. 그런데 우리 많은 주민들이 서명하고 기자촌 홈커밍데이라든가 은평문인전 또 여러 언론에 은평구가 얼마나 많은 준비하고 있는지가 많이 표출됐기 때문에 쉽사리 다른 곳으로 가지 않게 되었다. 저는 그나마 불행중 다행이라고 보고 있고요. 하반기 또 내년 언제 결정할지 모르겠습니다마는 우리 지역의 문화적 특성을, 문학적특성을 마을과 연계하는 여러 가지 플랜을 잘 짜가지고 앞으로도 계속 문학마을로서 은평구을 키워 나가려고 합니다. 거기에는 우리 의원님들의 적극적인 참여와 관심이 좀 필요합니다. 지금까지도 많이 해 주셨지만 불광동은 이호철선생과 관련해서 할 수 있는 일이 많이 있고 신사동 이쪽은 숭실학교 그렇지요? 녹번동은 정지용시인, 갈현동도 많은 위대한 작가들이 있었지요? 제가 알기로는 신달자씨가 거기에 살았는지. 아무튼 대조동, 역촌동은 조정래 그 다음에 진관동 이쪽은 기자촌이 있으니까요. 김훈 그 다음에 수색동 같은 경우도 복거일씨라든가 수색역이 3.1만세운동에 상당히 역사적 장소였다는 점, 응암동은 장총찬 인간시장의 김홍신 작가가 살았던 곳이고 제가 빼먹은 데가 있나요? 증산동은 누군지 잘 기억이 안나요. 아마 다 있습니다. 그리고 웬만큼 다 얘기한 것 같네요. 의원님들 한분 한분이 다 그쪽 전문가가 되어주셔서 유치하는데 특히 많이 관심을 기울여 주시면 도움이 되겠다. 너무 많은 부탁의 말씀을 드려서 죄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