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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의회 회의록을 사실 그대로

충북 단양군의회 발언

박창수 의원 발언

89회 제1본회의1999-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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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환

김중환의사담당주사

좌석을 정돈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지금부터 제89회 단양군의회 임시회 개회식을 거행 하겠습니다. 먼저, 국기에 대한 경례가 있겠습니다. 모두 일어나 정면의 국기를 향해 주시기 바랍니다. "국기에 대하여 경례" "바 로" 방청객 여러분과 집행부 공무원들께서는 자리에 앉아 주시기 바랍니다. 다음은 의원윤리강령을 장익환의원께서 낭독 하겠습니다. (장익환의원 : 의원윤리강령낭독) 의원님들께서는 자리에 앉아 주시기 바랍니다. 이상으로 개회식을 마치고 이어서 박창수의장님의 의사진행이 있겠습니다

박창수의장

성원이 되었으므로 제89회 단양군의회 임시회 제1차 본회의를 개의 하겠습니다. 먼저, 제88회 임시회를 끝낸지 얼마되지도 않아 또다시 이렇게 임시회를 개최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임시회를 개최하게 된 것은 동료의원님께서 잘알고 있는 바와같이 최근 언론에 연일 보도되고 있는 충북 영동의 『노근리 양민학살 사건』과 유사한 양민학살 사건이 우리 지역내에서도 있었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어 우리 의회에서도 이에 대한 한·미 양국 정부차원에서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등 지역현안 문제에 신속히 대처해 나가고자 급히 임시회를 소집하게 된 점을 이해해 주시리라 믿습니다. 그럼 의사진행에 앞서 의사담당주사로부터 제88회 임시회 이후 의정활동 사항등을 보고 받도록 하겠습니다.
중환

김중환의사담당주사

의사담당주사 김중환입니다. 먼저, 의원님들의 의정활동 사항입니다. 10월12일 전의원님들은 인천 공설운동장에서 개최된 제80회 전국체전 개막식을 참관하고, 우리군에서 출전한 선수들을 격려 하셨습니다. 10월16일 조동형의원은 영월군 하동면에서 개최된 제2회 김삿갓 문화큰잔치 개막식에 참석하셨으며, 10월17일 장용두의원은 적성면 상리에서 개최된 제1회 금수산 감골 단풍축제에 참석하여 관계자를 격려하였습니다. 10월18일 전의원님들은 의장실에서 의원간담회를 개최하여 영춘면 상리등 양민학살 사건에 대한 대책을 협의하였으며 김재홍의원은 10월 19일 도민체전을 위해 각종 경기훈련장에서 맹훈련을 하고 있는 선수들을 찾아 격려 하였고 10월20일에는 MBC 일요마당 토론회에 참석하여 우리군에서 개최되는 제38회 도민체전의 성공적인 개최를 위한 의견을 나누었습니다 10월20일 장익환의원은 신단양 선착장에서 장회나루터까지 충주댐 부유물 실태를 조사하고 댐지역내의 부유물을 조속히 처리해 줄 것을 한국수자원공사에 촉구하기도 하였습니다. 10월21일 박창수의장님, 김영주부의장님은 경찰의 날 기념행사에 참석하여 민생치안을 위해 수고 하는 경찰관을 위로 격려하였으며 오후에는 전의원과 함께 공설운동장 증수 준공 및 체전 출전선수 결단식에 참석하여 선수들을 격려하였습니다. 다음은 제89회 단양군의회 임시회 소집경위에 대하여 보고 드리겠습니다. 금번 임시회는 지난 10월18일 개최된 의원간담회에서 조동형의원 외 다수 의원님들께서 최근 언론에 보도되어 밝혀진 영춘면 상리등 피난민 학살 사건과 관련하여 중앙정부 및 관계기관의 진상조사를 요구하는 건의문채택을 위한 임시회 소집을 요구함에 따라 지방자치법 제39조 제③항의 규정에 따라 '99년 10월18일 소집공고를 하고 금일 집회를 갖게 되었습니다. 이상으로 제88회 임시회이후 의원님들의 의정활동 사항, 그리고 제89회 임시회 소집경위에 대해 보고드렸습니다.

박창수의장

의사일정 제1항 제89회 단양군의회 임시회 회기결정의 건을 상정합니다 조금전 의사담당주사가 보고한 바와 같이 금번 임시회는 단양지역 양민학살 사건과 관련하여 한·미 양국 정부에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건의문을 채택하고자 소집되었기 때문에 금번 임시회의 회기는 의원님들과 사전에 협의한대로 금일 하루만 운영하고자 하는데 의원님들 이의 없으시죠? (『없습니다』 하는 의원 있음) 이의 없으므로 금번 임시회는 금일 하루만 운영하기로 가결되었음을 선포합니다.
의사일정 제2항 단양지역 양민학살 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건의문 채택의 건을 상정합니다. 먼저, 건의문 내용을 조동형 의원님께서 낭독해 주시겠습니다.

조동형의원

지금 우리는 새로운 천년을 눈앞에 둔 20세기의 끝자리에 서있습니다. 이제 60여일만 있으면 지금의 세기는 역사의 뒤안길로 숨어버릴 때가 되었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촌은 1950년대 미국과 구소련을 중심으로 한 동서냉전의 시대가 1980년대 이르러 소련의 붕괴로 말미암아 공산국가가 몰락하면서 민주,자본주의 국가가 승리를 가져오면서 동서냉전의 갈등은 사라지고 화합의 시대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우리 대한민국은 지금도 세계에서 유일하게 동서냉전의 갈등을 털어버리지 못하고 한민족간에 남북대치 상태가 지속되고 있으며, 이로 인하여 인적·물적피해가 매우 크다고 하겠습니다. 우리모두가 다 잘알고 있는바와 같이 1950년 6월25일 발발한 6.25전쟁은 당시 규모와 그 후유증이 너무 커서 반세기가 지난 지금도 그 전흔의 잔재가 남아 수많은 사람들이 직·간접적으로 인적·정신적 고통을 받으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또한 6.25전쟁은 세계에서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동족간의 비극이었으며 지금까지 지구상에서 발생했던 전쟁중에서 4번째로 규모가 큰 전쟁임을 상기할때 동족간에 총부리를 겨누었던 당시의 전쟁이 얼마나 처참했던가를 미루어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을 것입니다. 한편 6.25전쟁의 발발로 인하여 우리 대한민국에 미국을 비롯한 세계서방 16개국에서 유엔연합군을 파병하여 우리나라를 도와준데 대하여 우리 대한민국 국민 모두는 매우 고마워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반세기가 지난 지금에 이르러 6.25전쟁으로 인하여 밀고 당기는 과정에서 국민이 목숨을 잃고 물적피해를 감수하는 것은 그시대를 함께하는 모든 사람의 운명이라 할 수 있으나, 정당하지 못한 방법에 의하여 국민이 목숨을 잃고 물적피해를 당하였다면 그것은 바로 가해자 또는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고 봅니다. 최근에 지난 6.25한국전쟁 당시 미군이 200명에 가까운 양민을 충북 영동군 황간면 노근리에서 학살한 사실이 뒤늦게 미국의 AP통신에서 보도하므로서 그동안 현지 주민들이 진상규명을 위하여 끊임없는 진정과 호소에도 불구하고 미국측의 기피와 우리당국의 무관심으로 사건자체가 축소 및 은폐되어 오다 반세기가 지난 지금에 와서야 학살진상이 밝혀지면서 미국 클린턴대통령의 지시에 의해 한·미양국간에 진상규명을 위한 조사가 시작되게 된 것은 매우 다행스러운 일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분명히 사건의 실체를 밝혀내야 할 또 하나의 과제가 남아 있습니다. 충청북도 최북단 소백산 아래 위치한 단양군은 6.25전쟁의 폐해를 심하게 입은 지역으로서 당시 면소재지인 영춘면 상리, 하리지역의 민가 및 면청사를 비롯한 공공건물을 모조리 방화하여 면 소재지의 마을은 잿더미로 변하고 특히 우리들의 씨족의 민본이 되는 중요한 호적서류가 불타버리는 비운을 가져 오기도 하였습니다. 그 이후 1951년 1.4후퇴로 이어지면서 영춘면 소재지는 완전히 치안부재의 무방비 상태로 지속되는 동안 소백산에서 은거하던 인민군 공비 소위 "빨치산"이 수시로 출현하면서 많은 인명을 살해하는 작전을 감행한 지역이기도 합니다. 그러자 이 지역의 인민군을 소탕하기 위한 미군의 공습으로 가곡에서 부터 영춘면 주변지역에 이르는 민가들을 1동도 안 남기고 모조리 소각해 버리는 결과를 가져 오기도 하였습니다. 그때 각처에서 모여든 피난민들은 은신처를 찾아 영춘면 상2리 느티마을 근처에 있는 넓은 동굴(일명:곡계굴)에 마을주민 100여명과 강원도 영월등지에서 온 피난민 200여명등 300여명이 피신해 있었는데 1951년 1월20일 미군 비행기가 굴입구 등에 폭격을 가하여 동굴내에 피신해 있던 선량한 피난민들이 연기가 동굴안으로 들어와 상당수가 질식해 숨지는등 당시 미군(연합군)의 폭격으로 인하여 많은 피난민이 전쟁 와중에서 아군에 의해 목숨을 잃은 사고와 관련하여 현재 생존자 및 유가족들은 이 사건도 「노근리 양민학살사건에 대한 진상조사」와 함께 병행 조사해 주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사건 당시 생존자인 조일원씨 (83세, 영춘면 상2리 333)는 「사건당일날 오전10시에서 11시쯤 4대의 비행기가 날아와 출입구를 향해 30여분동안 폭격을 퍼부었다」며, 「바로 전날 오후 5시쯤 미군 정찰기가 영춘면 일대를 비행하고 난뒤 다음날 폭격이 이루어진 점을 미루어 볼때 계획적인 폭격인 것 같다」고 증언하고 있으며 또한 당시 제천농업중학교 2학년때 변을 당했던 조봉원씨(64세, 전 제천공고 교장)는「당시 1.4후퇴로 영춘면에 위치하고 있는 태화산에서 숨어 지내다가 곡계굴로 옮겨 피신을 했는데 폭격으로 불길이 동굴안까지 번져 부친과 여동생이 불에 타 숨졌으며 나는 연기에 질식해 정신을 잃었다가 폭격이 끝난후 달려온 마을 주민들이 동굴 밖으로 끄집어내 살수 있었다」고 말하고 있는가 하면 곡계굴 폭격사건의 생존자인 조준형씨(61세, 영춘면 상2리)는 「미군이 비행기 폭격을 퍼붓고 보름정도 지난후 헬리곱터 1대가 곡계굴 앞의 밭에 착륙하더니 미군병사 2명이 동굴로 들어가 사진을 찍고 돌아갔다」고 증언하고 있으며, 조씨는 「폭격사건 당시 어머니와 동생 4명과 함께 동굴에 피신해 있었는데 어머니와 동생 3명은 연기에 질식해 숨지고 나와 동생 1명만 동굴밖으로 뛰쳐나와 살수 있었다」며 「당시 동굴에는 연기등으로 인하여 질식해 숨진 시체가 상당수 있었던 것을 미군이 확인해 갔다」고 증언하고 있으며, 당시 영춘면사무소 호적계에 근무했던 조재기씨 (82세)의 증언에 의하면「영춘면 상2리 곡계굴에 대한 폭격으로 동굴에 피난온 많은 사람들이 숨졌으며, 숨진 피난민중 연고가 있는 마을주민의 경우는 가족들이 시신을 처리 했으나 외지에서 온 피난민중 사망자의 시체는 2∼3개월후 영춘면 사무소에서 사역인부를 동원하여 영춘면 상리 산7번지와 산13번지등 인근 공동묘지나 방호선에 대부분 파묻어 처리했다」고 증언하고 있으며 또한, 당시 미군폭격으로 아버님이 곡계굴 입구에서 불에 타서 돌아가셨다는 조태원씨(76세:전 영춘면장)의 증언에 의하면 「굴 입구에 기름통을 내려 놓고 미군 비행기가 폭격을 가해 불길이 굴 입구 안으로 번지자 굴 입구쪽에 있던 마을 주민들이 불에 타서 죽었으며, 이때 아버님도 돌아가셨으며 당시 시신을 불에 타서 찾을 수가 없었다」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조씨는 또한「당시 영춘면사무소 회계원으로 근무하고 있으면서 사건발생 이후 2∼3개월 경과 후 영춘면에서 마을주민 5명(현재 모두 사망)을 사역하여 약 보름정도 곡계굴 안에서 숨진 시체들을 가마니등에 담아 지게로 운반하여 공동묘지등에 묻었으며, 인부임으로 당시 300환 정도 지불한 것 같다」고 증언하고 있기도 하며 또한, 당시 곡계굴 폭격사건으로 할머니와 고모, 누나등 3명의 가족을 잃은 김주호씨(42세:영춘면 상2리 208)는 20여년전에 마을 친구들과 함께 곡계굴 동굴에 들어가 호롱불, 엽전, 수저, 호리병 및 굴 입구등에서 탄피등을 주워서 현재 보관하고 있는 것을 1999년 10월 20일 충청일보 지면을 통해 공개하므로서 사건의 실체를 뒷받침해 주고 있으며 김씨는 「당시 굴입구와 주변에서는 탄피등을 쉽게 발견 할 수 있었으며 동굴안에는 당시 숨진 사람들의 것으로 보이는 사람뼈가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고 증언하기도 함은 물론, 이 사건으로 인해 영춘면 상2리에 거주하고 있는 사람들중 부모등 직계가족을 잃은 유가족들은 현재 음력 12월12일이 되면 집집마다 제사를 지내고 있다고 하는가 하면 또한, 금년 7월 작고한 향토사학자 우계홍씨(86세, 전 영춘면장)는 지난 1991년 「곡계굴 피난민 학살사건」에 대한 내용을 단양군지에 싣기 위해 당시 상황을 조사한바에 의하면「1951년 당시 연합군이 인민군 소탕을 위해 영춘면 일대에 폭격을 가해 민가를 1동도 안남기고 소탕해 버렸다」며 「그때 이곳으로 모여든 피난민들은 곡계굴로 들어가 피신하고 있는데 이를 인민군으로 오인한 연합군이 폭격을 가해 많은 사람들이 동굴안에서 목숨을 잃었다」고 사건조사에서 기록하기도 하였으며 동 사건은 처음 충청일보 ('99. 10. 8)에 「단양서도 피난민학살」이라는 제목으로 보도가 된 이후 각 언론 및 방송사에서도 동 사건에 대한 내용들이 게재되거나 방송이 되었음에도 충북 영동의 「노근리 양민학살사건」에 대해서는 한·미합동으로 진상규명등을 위한 조사가 이루어 지고 있는데 반하여 우리지역의 곡계굴 피난민 학살사건에 대해서는 아무런 조치등 진상규명이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과 관련하여 양민이 억울한 죽음을 당한 사실은 「노근리 양민학살 사건」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뿐만 아니라 6.25전쟁 당시 단양지역은 소백산맥을 중심으로 한 치열한 접전지역으로써 1999년 10월9일 중부매일에서 보도된 바 있는 「양민학살 단양군 노동리서도」라는 제목하에 6.25전쟁 이후 1.4후퇴 당시 노동리 마을 주민들이 미군들에 의해 학살된 데 대하여 주민들은 진상규명을 요구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당시 상황을 생존해 있거나 목격자들의 증언을 통하여 살펴보면 목격자인 문명숙씨(61세, 단양읍 노동리 33)는 「당시 12살 정도 되었을 때 집이 노동국민학교로 부터 상류지역에 위치하고 있었는데, 날이 어두어 지면서 인민군들이 30∼40여명이 산에서 내려와 우리집과 이웃집등에서 머물면서 밥을 해먹으며 다음날 단양을 점령할 계획이라는 이야기를 하는 것을 들었다」고 하는가 하면「문씨 가족들은 모두 집에서 내려와 하룻밤을 아랫마을에서 지낸 후 다음날 오전 10시경에 곰말부락에서 노동리 부락을 향해 탱크가 들어오면서 폭격을 가해 민가들이 불타 버리는 등 이로 인하여 마을 주민들이 목숨을 잃었다」고 증언하고 있으며 현재 노동리에서 살고 있는 정옥이(66세)씨는 「미국군인들이 탱크를 몰고 와 동네마을 집들을 폭격하거나 모조리 불태워 버리는가 하면, 시아버님이 집이 불에 타버리자 문밖으로 나오는데 미국군인이 총을 쏴서 그 자리에 숨졌으며 시어머님은 그 광경을 보고 몸을 숨기기 위해 집안으로 다시 들어 갔다가 불에 타 숨진 후 가족들은 시어머님이 끼고 있던 금반지를 보고 시체를 찾아서 장례를 치루었으며 음력으로 12월6일이 되면 부모님에 대한 제사를 지내고 있다」고 함은 물론, 「같은 날 제사를 지내는 동네 사람이 현재 몇가구 더 있으며 그 당시 살던 사람들이 미국군인들에 의해 많이 숨지는가 하면 그 이후 후손들은 노동리 마을을 떠나 다른 곳으로 이사를 하는 등 현재는 많이 살고 있지 않다」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단양읍 노동리에서도 많은 양민들이 미군에 의해 목숨을 잃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지고 있는 실정에 있습니다. 따라서 현재 진상규명에 있는 미군에 의한 「노근리 양민학살 사건」들이 잠잠해 지면 우리지역에서 발생했던 피난민 학살사건등이 그대로 역사속으로 묻힐 가능성이 있는 바, 「노근리 양민학살 사건」과 함께 우리지역에서 일어난 양민학살 사건등도 반드시 진실규명이 이루어져야 하겠습니다. 그렇게 하므로서, 당시 영문도 모르고 죽음을 당한 이들의 원혼을 뒤늦게 나마 달래는 길이 될것이며 지난 과거의 암울했던 상처로 한맺힌 삶을 살아가고 있는 유족들을 위로함은 물론 우리모두는 새로운 천년을 맞이하는 21세기의 복지국가로 전진할 수 있다고 하겠습니다. 따라서 희생자들의 신원(신원)을 위해서라도 우리 정부에서도 「영춘면 곡계굴 피난민 학살사건」등 단양지역에서 일어난 미군에 의한 양민학살 사건에 대한 진상규명에 적극 나서야 할 것입니다. 이에 우리 단양군의회 의원일동은 우리지역에서 6.25전쟁으로 인한 특수 상황속에서 미군들에 의해 발생된 피난민등 양민학살 사건에 대하여도 현재 진행되고 있는 충북 영동의「노근리 양민 학살사건」에 대한 진상규명과 함께 조속한 시일내에 진상규명 작업이 이루어져 진상이 드러나면 그에 상응하는 진솔한 사과와 억울하게 숨진 영령들을 달래기 위한 위령탑 건립등 합당한 배상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군의원 일동은 연서하여 간곡히 건의하오니 선처하여 주시길 바랍니다.

박창수의장

조동형 의원님 수고 하셨습니다. 동 건의문은 앞서 말씀드렸듯이 노근리 양민학살 사건에 대해서 한·미 합동조사가 진행되는 시기에 맞추어 1951년 1.4후퇴당시 우리지역에서 발생했던 미군에 의한 피난민등 양민학살 사건을 대내외에 알림은 물론, 이 사건을 현재 한·미 합동으로 진상규명를 하고 있는 충북 영동의 「노근리 양민학살 사건」과병행하여 함께 진상규명을 해줄 것을 한·미 양국 정부 및 관계기관에 건의하고자 하는 것으로 억울하게 숨진 양민들의 원혼을 달래고, 유가족의 고통을 조금이나마 덜어 주고자 하는 것입니다. 동 건의문은 그동안 의원님들의 현지조사와 증인들의 증언을 토대로 작성된 것인 만큼 만장일치로 채택하고자 하는데 의원님들 이의 없습니까? (『없습니다』 하는 의원 있음) 이의 없으므로 동안건은 원안대로 채택되었음을 선포합니다. 동 건의문에 대해서는 빠른 시일내에 한·미 양국 정부 및 관계기관등에 이송하여 적극적인 진상규명을요구하도록 하겠습니다.
의사일정 제3항 제89회 단양군의회 임시회 회의록 서명의원 선출의 건을 상정합니다 금번 임시회의 회의록 서명의원은 의원님들께서 사전에 협의한 대로 김재홍의원과 유영진의원으로하고자 하는데 의원님들 이의 없습니까? 이의 없으므로 금번 임시회의 회의록 서명의원은 김재홍의원과 유영진의원이 선출되었음을 선포합니다. 이상으로 의사일정을 모두 마쳤습니다. 동료의원 여러분, 그리고 바쁘신 중에도 의회에 깊은 관심을 가지시고 자리를 함께 해주신 실과소장님, 방청객여러분 고맙습니다. 산회를 선포합니다.

「없습니다」하는 의원 있음

10시35분 산회

출처 충북 단양군의회 회의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