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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양평군의회 5분자유발언

박선배 의원 5분자유발언

84회 제3기념비및김찬제유허비진상조사특별위원회1999-11-13

박선배 의원 프로필 보기 →

영호

이영호위원장

성원이 되었으므로 을미의병기념비및김찬제유허비진상조사특별위원회 제3차 위원회를 개의하겠습니다. 개의를 선포합니다. 먼저 의사담당주사로부터 오늘 상정될 안건보고가 있겠습니다. o 안건보고
봉진

전봉진의사담당주사

의사담당주사 전봉진입니다. 오늘 상정될 안건을 보고 드리겠습니다. 오늘 상정될 안건은 지난 9일 제84회 양평군의회 임시회 제1차 본회의에서 제안설명을 들으시고 본 특별위원회로 회부된 안건으로서 의사일정 제1항 을미의병기념비및김찬제유허비진상조사의건이 어제에 이어 계속해서 상정되겠습니다. 이상으로 보고를 마치겠습니다.
영호

이영호위원장

그럼 의사일정 제1항 을미의병기념비및김찬제유허비진상조사의건을 상정합니다. 어제에 이어 기념비문에 대한 참고인 진술을 듣는 방법으로 회의를 진행하겠습니다. 참고인께서는 답변석에 자리해 주시기 바랍니다. 진행에 앞서 항상 저희 양평군의회 발전을 위해 바쁘신 가운데에 조언과 질책을 해 주시고 또한 바쁘신 중에도 본 특별위원회에 출석해 주신 장삼현교수님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오늘 참고인께서는 이 자리에 오신 사유는 을미의병 기볌비문에 대한 의견을 듣고자 함입니다. 의견진술이 끝난 후 본 특위의 위원님들이 질의에 성심성의껏 답변해 주시기를 당부드립니다. 간략한 본인 소개와 더불러 을미의병 기념비문에 대한 의견을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고인

참고인

장삼현 장삼현입니다. 현재 경원전문대학에 근무하고 있습니다. 아시겠지만 제 고향은 서종면입니다. 비문을 ’95년도 겨울엔가 이렇게 문화원장님으로부터 부탁을 받고 제 나름대로 또 객관적인 이런 차원에서 비문을 지었습니다. 비문을 어떤 취지로 어떻게 지었는가는 제가 여기 길게 말씀드리지 않고 이 3페이지 보면 그 페이지가 맞지 않겠습니다만 뒤로 자꾸 넘기면 기념비문 다음에 3페이지가 나옵니다. 여기서부터 3, 4, 5, 6, 7페이지까지는 그 당시의 비문을 제출하면서 ’96년 6월달입니다. 제출하면서 이렇게 비문을 지었다 하는 것을 그 당시의 기념비 건립위원님들께 배포가 됐던 것입니다. 그걸 그대로 수정없이 그대로 지금 여기다 올린겁니다. 어떻게 학식도 부족하고 여러 가지 부족한 놈이 이렇게 비문을 짓게 돼가지고 본의 아니게 이렇게 위원님들께 많은 심려를 끼쳐드리고 그래서 죄송합니다. 저는 저 나름대로 썼습니다마는 보는 의견이 각각 다르기 때문에요, 여러 가지로 많은 지도를 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이상입니다.
영호

이영호위원장

수고 하셨습니다. 질의하실 위원님 계십니까?

김영구의장

위원장님! 발언권 주시겠습니까?
영호

이영호위원장

의장님 질의하시죠.

김영구의장

고맙습니다. 질의가 아니고 사실 지금 참고인으로 참석해 주신 장교수님께서 지금 오시면서 이런 자료를 준비해 주셨는데 이 자료를 들춰볼 시간을 정회를 해서 가진 연후에 질의를 할까 하는데 위원장님 다른 위원님들 뜻을 한번 물어보시고 해 주시죠.
영호

이영호위원장

우리 의장님 지금 말씀하시는 뜻이 이해가 가시는지요? 그러면 자료를 보시기 위해서 30분만 정회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정회를 선포합니다.

「좋습니다」하는 위원 있음

10시34분 회의중지

11시10분 계속개의

성원이 되었으므로 회의를 속개 하겠습니다. 짧은 시간에 자료를 습득하셨는데 습득하신 자료를 가지시고 장삼현교수님께 질의할 위원님 계십니까?

김영구의장

발언권 주시겠습니까?
영호

이영호위원장

예, 발언권 드리겠습니다.

김영구의장

고맙습니다, 위원장님. 우선 별도의 다른 발언권 없이 일문일답으로 진행해도...
영호

이영호위원장

예, 예.

김영구의장

장교수님! 지금 우선 장교수님이 저희 위원님들께 나눠드린 자료에 의한 질의를 할까 합니다. 맨 처음에 위정척사론에 대해서 말씀을 해 주셨는데 미국에서 있었던 흔히 말하는 노예해방 전쟁이라고 하는 남북전쟁은 어떤 견해로 보십니까?
고인

참고인

장삼현 민주주의를 표방하는 미국인데 당연히 민주화를 위해서,

김영구의장

결국은 인권운동이지 않습니까?
고인

참고인

장삼현 예.

김영구의장

당시의 위정척사정신은 우리 조선인들의 어떤 자존심 또 흔히 장교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의리로 규합되는 참 우리의 대단한 정신이라고 누구나 인정을 합니다. 그러나 지금에 와서 역사를 조명할 적에 이 위정척사 말 그대로의 정말 의리와 도리를 깨우치는 그런 대단한 정신도 있지만 또 한편으로는 양반계급의 계승, 결국 반상을 고집하는 그런 논리도 있었다는데 그것 사실입니까?
고인

참고인

장삼현 아니 그렇지 않습니다.

김영구의장

그런데 지금의 역사를 배우거나 역사를 가르키는 선생님들께 자문을 구해 본 결과 그렇게 조명되고 있다. 그건 뭐 대한민국 어느 학교에서나 지금 그렇게 가르키고 있다고 하는데 그러면 지금 교육이 잘못된 것입니까?
고인

참고인

장삼현 그것은 위정척사의 본질을 어떤 분이 그런 말씀을 하셨는지 모르지만 역사를 보는 관점이 각각 다르겠습니다마는 위정척사의 또는 척사위정이라고 그럽니다. 그 본질을 제대로 파악을 못하지 않았나 이렇게 생각을 합니다. 왜 그러냐 하면은 위정척사운동은 신분하고는 전혀 별개의 문제입니다. 신분제도하고는.

김영구의장

좋습니다. 이 위정척사론이 크게 대두되기 이전에 대원군의 쇄국론이 있었습니다. 쇄국론하고 지금 위정척사론하고는 어느 일맥이 통하거나 안 통하거나 거기에 대해서 자세히 알고 계십니까?
고인

참고인

장삼현 대원군의 쇄국정책을 일반적 역사하는 분들이 그 당시에 빨리 개화를 해서 문을 열어가지고 서양문물을 받아들여야 되는데 문을 닫았기 때문에 조국 근대화가 늦어졌다 이렇게 보는 시각이 있는데요, 저는 생각을 달리합니다. 그 당시의 서구세력이라고 하는 것은 전부 중상주의, 중상주의는 뭐냐면 식민지 개척에 혈안이 돼있던 이 사상입니다. 그래서 역사를 보는 시각이 다르겠습니다마는 우선 침략주의기 때문에 그 당시에 화서선생님도 여러 가지 말씀을 하셨습니다마는 적과는 통할 수가 없다, 적을 받아들일 수 없다 그래서 개문학적이라고 그러지 않습니까? 문을 열어서 적을 안으로 받아들일 수가 없다 그래서 주체사상으로 보고 있습니다, 저는. 또 민족주의 차원에서 쇄국을 평가할 수가 있다, 단순히 근대화라고 하는 그런 차원에서만 볼게 아니라 말이죠. 그래서 이 척사위정하고 맞아떨어지는 부분이 있습니다, 사실은.

김영구의장

그런데 사실 그 당시는 물론 위정척사정신이 주로 우리 민족의 기둥정신이었던 것은 사실인 것으로 아마 대부분 인정하시고요, 대원군의 쇄국정책과 일맥이 통한다손치면은 쉬운말로 대원군도 처음에 정책을 펼 적에는 예를 들면은 우리 한복 소매가 길었던 이걸 짧게 짤라라 하는 그런 정책을 썼었습니다. 인정하십니까?
고인

참고인

장삼현 대원군 정책은 글쎄 대원군을 보는 시각이 또 차이가 있는데요, 그 당시에 어떤 면이 있느냐 하면 혹시 명예훼손죄에 해당되는지 모르겠습니다마는 대원군이 학자는 아닙니다. 나쁜 표현을 하면 건달 비스름 하고 불한당 같은 이런 사람이다 이렇게 선비들이 평가를 합니다.

김영구의장

기록에 의해서요?
고인

참고인

장삼현 예, 아주 구전에 그렇게 전해지고요, 그래서 얘기를 하면은 만복묘를 갔는데 옛날에는 안경을 못썼습니다. 만복묘를 갔는데 거기서 “신을 벗어라, 안경 벗어라” 그러니까 “네가 도대체 누군데 뭘 벗어라 뭘 벗어라 저깐놈들이 뭔데” 그래가지고 서원철폐령이 내렸고, 그 다음에 각 선비 뭐뭐한 선비 대문에 오물을 갖다 퍼붓는 행동이 있고 그렇게 많이 좋지 않은 인물로 평가됩니다.

김영구의장

예, 좋습니다. 아니 지금은 그 인물론을 따지는 것은 아니고요, 당시에 쇄국론과 위정척사론이 일맥이 통하는 것이 있다고 말씀을 하시니까 그렇습니다. 사실상 일맥이 통한다기 보다 거의 아마 비슷한 정신이 아니었나 하는 것이 지금 조명되는 학자들의 말씀으로 알고 있고요, 그 대원군 그 분도 또한 아까 말씀드린 것 처럼 옥소매를 짧게 짤라라 한 것은 결국 사람 편한생활을 하자는 뜻에서 였습니다. 지금 왜 이 말씀을 드리냐 하면은 여기 주신 자료에 의해서 그렇지만 당시에 갑신정변의 주역이었던 개화파들, 개화당 이것을 비문에 교수님께서는 간적으로 몰아부친 타당한 이유를 여기 해 주셨습니다만 저희 의회에서는 특위에서는 또 어제 적어도 우리 관내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국사선생님들을 모셔서 들은 적도 있고, 또한 배우셔서 저희 세대에도 그렇게 배웠기 때문에. 위정척사만을 고집 했었어야 됐었느냐? 아니면 개화를 하지 못해서 우리가 근대화 되지 못 했느냐? 이것은 솔직히 개화를 하지 못 했다. 그렇다면은 어느 한쪽에서만 조명할 것은 아니지 않느냐? 어느 물건을 하나 골르면 이쪽 측면에서도 비추어 보고, 저쪽 측면에서도 비추어 봐야 그 물체가 정확히 나오는건데 이렇게 장교수님의 자료를 보면은 제 생각으로는 너무 위정척사론만 옳다. 개화는 아니다. 결국 개화가 뭡니까? 저희가 지금 편하게 살고 어느 누구나 사람은 편하게 살고 싶어 합니다, 특히 생활에서. 그래서 자동차도 자꾸 개발하고 비행기도 개발해 타고 다니고 하는건데 위정척사의 정신만 고집하고 개화를 하지 않고 여태 있었다면은 사실상 위정척사 정신으로 본다면 저희가 어느 외국기술을 배워 오는 것도 그 정신에 위반되는거 아닙니까?
고인

참고인

장삼현 이것은 학문적인 문제인데요, 을미의병 기념비를 세우는 것하고 학문적으로 개화사상이 옳으냐, 위정척사 사항이 옳으냐 하는 것은 별개 문제입니다.

김영구의장

예, 그래서 다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이 비문은 우리 양평군의 향토사적이지만 국가사적일 수도 있습니다. 어느 대한민국 국민 누구나 와서 볼 수 있는 겁니다. 그렇다면은 적어도 양평군이 세운겁니다, 어쨌든간에. 장교수님이 기술을 하셨던 누가 했든, 양평군에서는 그때 당시에 개화사상을 가진 이분들을 전부 이렇게 간적으로 몰아서 비문을 세워도 되느냐 이렇게 되니까 비 문구에 대한 시비가 걸리니까 드리는 말씀이지요. 을미의병하고 꼭 그것하고만 연계지으신다면 장교수님도 화서선생님 언급할 필요가 없지요.
고인

참고인

장삼현 비 세우는게 그 왜적의 침입으로 인해서 우리가 거기에 대항해서 자기 가정이나 자기 목숨을 돌아 보지 않고 대항해서 싸운 그 의미가 거기 담겨져 있는 것이고요, 간적이라고 하는 것은 그 당시에 상소문이나 모든 책에 연암선생이나 기우만선생이나 등등 여러분들이 충적 또는 주구, 주구는 개라는 얘기입니다. 또는 역신 또 난신적자 이런 상소문의 표현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 정신에 척사위정이라고 하는 것만 아니라 을미의병이라고 하는게 척사위정 사상에서 나왔기 때문에 그 위정척사 사상을 거기 언급한 것이고요, 그 당시로 봐서는 간적이라는 표현이 간교한 적신이다. 일본놈에게 달라 붙어서 일본에게 자금을 받고 일본 군사를 동원하고 일본놈과 같이 손을 잡고 정변을 일으켰다. 그 하나가 아니라 그 뒤에 거기 관련된 사람이 계속 연관이 된 경우도 있고 그런데요...

김영구의장

중간에 죄송합니다. 그렇다면은 지금 기술하신 김옥균과 정병하등 이 여섯분이 계셨는데 이분들은 완전히 자기네 개인을 위해서 일인과 협력했다고 그렇게 보시는 겁니까?
고인

참고인

장삼현 그런 시각...

김영구의장

아니 그러니까 지금 장교수님 생각에 이분들도 어떻든 조국을 위할려고 하다가 그 하는 행위가 서로 틀렸을 뿐이고 위정척사냐 개화냐 하는 거기에 틀렸을 뿐인데 위정척사에서 볼적에 그러면 개화쪽에서 위정척사를 볼때는 어떻게 보겠습니까?
고인

참고인

장삼현 그러니까 학문적인 문제하고 전 비 세운 것 하고는 별개라고 봅니다.

김영구의장

아니 지금 비에 그렇게 써 있으니까 하는 얘기입니다. 굳이 이렇게 이분들을 간적으로 몰아서 양평군이 세우는 비문에 이렇게 적혀졌어야 되느냐? 그래야 이 비의 존립이 더 대단하게 되느냐 이겁니다.
고인

참고인

장삼현 그러면 말이예요, 그와 조금 관련된 얘기인데 가령 그 당시에 정부의 명을 받고 임무를 수행하는 군수들 말이예요, 관찰사들 이런 사람들 다 제천 을미의병에서 여기 저기서 다 목을 베고 그랬는데 그런 시각으로 보면 그사람들이 다 의병장 가치도 없는 사람들이고 포상을 받을 수 없고 그렇다는 얘기입니다. 그당시로, 역사적인 것은 그 당시로 봐야지 그 당시에 관한 것을 비를 세워놓은거기 때문에 학문적인 것하고는 별개입니다, 이게.

김영구의장

아, 역사적인 것은 그 당시로 봐야 된다는 말씀 이십니까?
고인

참고인

장삼현 예.

김영구의장

좋습니다. 그렇다면은 당시에 다 살지 않았습니다, 여기에 계신 분들 누구나. 그리고 장교수님이 어느정도의 준비를 가지고 하셨는지 몰라도 기록으로만 후세는 알 뿐입니다. 그렇다면은 장교수, 지금 뭐 반론을 제시한 사람 이렇게 여렇이 있는데 모두가 기록에 의해서 장교수님이 왜곡을 했다. 또 장교수님은 이 기록에 의해서 아니다 지금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그럼 어느 기록이 옳은, 장교수만이 주장하는 기록이 옳은 당시의 역사입니까? 아니면 다른 사람이 주장하는 기록도 당시의 역사입니까?
고인

참고인

장삼현 자꾸 학문적인 얘기가 됩니다, 그러면. 학문적인 논란이 되는데...

김영구의장

말씀을 당시의 역사를 말씀 하시니까 그렇지요. 그러면 쉬운말로 준비를 해 주신 것도 있지만 종의록도 있고 무슨 기려수필도 있고. 그러면 양쪽이 상이한게 있습니다. 그러면 어느것이 옳은 것이냐 이거지요. 그러니까 장교수님 인용한 책만 옳은 것이냐, 상대에서 반론을 제기하는 사람이 한 사료는 옳지 않은 것이냐 이거지요?
고인

참고인

장삼현 비를 건립하는 취지가 있습니다, 양평땅에다가. 거기에 부합하게 쓴 것이지, 화서선생도 욕하는 사람 있고, 나쁘다 이런 평이 있습니다.

김영구의장

지금 화서선생님을 나쁘다 이거는 아닙니다.
고인

참고인

장삼현 그러니 견해가 그게 다르다는 얘기입니다.

김영구의장

누가 뭐래도 우리 양평의 걸출한 인물중에 최고를 자랑하시는 분이 화서 선생님이시고 누구나 그분을 부정하는 분은 아직도 한분도 없다고 생각 됩니다. 그분의 위정척사 정신을 이어 받아서 당시의 굳건한 민족정신이 되고 의병도 할 수 있는 기반정신도 된건 다 인정합니다.
고인

참고인

장삼현 아니야, 그렇지 않아요.

김영구의장

예?
고인

참고인

장삼현 그렇지 않은 점도 있어요.

김영구의장

아니 무슨 말씀이십니까, 또?
고인

참고인

장삼현 이게 그러니까 학문적인 문제에 들어 간다 이 얘기예요. 개화를 지지하는 학자들은 화서 선생님이 우매한인물이다, 시대 흐름에 꼭 막힌 사람이다 이런 정도가 되고, 그러니까 서로 비판이 이루어지는건데요. 위정척사 척사운동을 비판하는 학자들도 많아요, 굉장히 많아요.

김영구의장

아 지금 학생들은 그렇게 가르침을 받고 있습니다.
고인

참고인

장삼현 아니예요 그렇지 않습니다.

김영구의장

예, 좋습니다. 글쎄 이걸로 크게 시간 끌을건 아니고 이 문구가 과연 이런 학문적인 문제데 한쪽에서만 이렇게 조명을 해서 간적으로 굳이 써서 거기다 해야할 이유가 그렇게 있었느냐 이거지요? 만약에 이분들의 자손들이 와서 저 비문들을 보면은 만약에 입장을 바꿔서 혹여 장교수님이 이분들 자손이라고 생각을 한번 해 보시지요.
고인

참고인

장삼현 아마 기분 나쁘겠지요.

김영구의장

제가 어느 이름은 거론하지 않겠습니다마는 어느 뭐 대학에 대학원장으로 계시는 분한테 전화를 걸었습니다. “비문이 이마이마해서 이런 것 때문에 좀 말썽이 생깁니다” 이랬더니 “글쎄 특히 이 지역에 세우는 그런 비문 같은건 좀 좋은 것은 조금 더 좋게 좀 안 좋은 것은 안 쓸수도, 그것은 대부분 그정도로 한다.” 그런 말씀을 하시더라구요. 그런데 이정도는 누가봐도 그렇다고 장교수님을 지금 아주 없는걸 썼다 이건 아닙니다. 누가 봐도 이정도는 언급하지 않았어도 참 비문에 문제가 없지 않았나! 지금 장교수님께서는 더군다나 우리 고장의 화서선생님의 정신 그 정신이 참 의병의 기본정신이 됐다 누구나 다 인정하는 걸 강하게 어필을 하실려다 보니까 이렇게 하셨는지 몰라도 모든 사람이 중론이 저 정도는 안 써도 되지 않느냐, 저 정도는 뺏어도 되지 않지 않았나 이런 중론이 있다면은 그것도 과히 그렇게 나쁜 방법은 아니지 않습니까?
고인

참고인

장삼현 일에는 반드시 상대가 있는겁니다. 그런 사람들이 그렇게 그렇게 해서 그당시에 일본놈들에게 달라 붙어 가지고 간신배처럼 그렇게, 왕이 무슨 힘이 있습니까, 뭐가 있습니까? 그들이 다 주물렀지요. 그런 차원에서 그걸 봐야지요. 그럼 그렇게 생각하면은 즉 비라고 하는 것은 대의가 의리정신이 있어야 되는 겁니다. 그런 정신도 없이 그냥 서로 화합하는게 좋다 그런 차원에서 그 비문을 쓸 수가 없습니다, 저는. 그래서 그렇게 썼습니다.

김영구의장

알겠습니다. 뭐 선생님 뜻이었다는 말씀이시고요, 또 하나 거론하겠습니다. 맨 나중에 시 귀절처럼 쓰신게 있습니다. 비문을 더 빚나게 하기 위해서 쓰신 것 같은데 “화문의 연원에서 의리가 쏟아져서 지평의 두 의사가 호국운동 선창하니 위정척사한 이 중에 양평군의 대표로다” 했는데 이 지평의 두 의사는 누구를 지칭하신 겁니다.
고인

참고인

장삼현 그건 안하사하고요 괴은입니다.

김영구의장

그러면 결국 여기도 좀 대중적인 면에서 볼적에요, 양평의 의병정서 또 양평인들이 알고 있는 지평의병 이것은 괴은선생, 하사선생 또 김백선장군 이렇게 알고 있습니다. 인정하십니까? 김백선장군.
고인

참고인

장삼현 예, 그 셋만이 아니겠지요.

김영구의장

그런데 이글의 마지막을 보면은 화문만 얘기하실라고 하셔서 그런지 “두의사가 선창하니” 이렇게 되면은 이 두분이 결국 하시고 김백선장군은 어디로 간 것처럼 이렇게 보인다 말이지요.
고인

참고인

장삼현 그 앞에서 모의라는 것도 여기서 질의를 하시겠습니다마는 김사정이라는 분은 여기 분은 아니지만 원주분이니까 그렇고, 김용준 그분도 그렇고 안종응 안하사 아버님 되시는 분도 그렇고 그런데 실제로...

김영구의장

그분들이 뭐 같이 한자리에서 같은 시간에 모의를 했던 안 했던 이 의병을 하겠다는 생각들이 있으신걸로 봐서 그것은 거론치 않겠습니다. 단지 어떻게 두 의사만이 호국운동을 선창 했느냐? 이 양평군의 대표로다. 이렇게 됐을 적에는 화문에 두 분만 하고 그럼 평민출신인 김백선장군은 어디로 가지 않았습니까, 지금?
고인

참고인

장삼현 양평 을미의병기념비를 세울 때 다른 분들이 말들이 계셨는데 그것이 뭐냐 하면은 “왜 지평에다 세우느냐?” 하고, “을미의병이면 전국적인거래야 되지 않느냐?” 그런데 사실은 그건 지평의병의 비인데요 거기에 물론 세분이 주동이 되셨는데, 특별히 꼬집는다면요. 김백선 그분은 거기다 넣을 수가 없는 것은 이미 앞에서 의리를 져 버리고, 그것도 기록이 이 기록, 저 기록 차이가 납니다마는 의리를 져 버렸기 때문에 거기다 같이 넣을 수가 없지요.

김영구의장

그 지금 분명히 하여튼 못 넣었다는 말씀만 하신거고 김백선장군도 틀림없이 이 괴은, 하사선생님 이분들과 같이 거의를 한건 인정 하셨지 않습니까?
고인

참고인

장삼현 아까 그 앞에도 그렇게 썼잖아요.

김영구의장

이 문구가요, 물론 우리 한글이 유권해석이 여러 가지로 다릅니다만 여러분 말씀하시는게 지금 임종선씨나 안금식씨 이분들도 얘기를 했습니다. 또 다른 분들도 말씀 하시기를 장교수님이 쓴 문구중에 괴은이 김백선을 설득하고 이 설득이라는 말은 결국 김백선장군은 별로 마음이 없었는데 이 괴은선생이 와서 설득을 해서 시작이 됐다. 결국 괴은선생은 엄청나게 올라가는 추세, 쉽게 말씀 드리면요, 김백선장군은 별로 마음도 없었는데 설득당한 자세 이런식이 되니까 말씀하신 것이고 또 하나 “김백선도 지평사람인데 의리와 기개가 있어 괴은을 따라 동참하였다.” 별로 가고 싶지 않았는데 따라 갔다는 얘기지요. 그것도 의리와 기개가 있으니까 따라간거지 그것도 없었으면 안 따라간거지요, 이거는. 이게 결국 나중에 지금 말씀 하신 것 처럼 연원에서 의리가 쏟아지고 지평의 두 의사가 이정도까지 맥이 이어지니까 대중으로써는 당연히 얘기가 나온다고 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앞에도 이렇게 괴은선생이 김백선을 설득한거고 결국, 김백선은 설득 당한겁니다. 그리고 따라서 질질 뭐 정말 더 안 된 말이지만 끌려 간거나 마찬가지고 나중에 또 지평의 두 의사가 선창하니 양평군의 대표로다. 이렇게 된다면 김백선장군은 어디 가신거 아닙니까 지금.
고인

참고인

장삼현 설득이라고 하는 것은 그 분이 안할려고 하는걸 설득 했다는게 아니라 “이러이러 하니까 이렇게 하자” 그게 설득 아닙니까? 하기 싫은걸 갖다가 억지로 하는게 아니라.

김영구의장

그러면 장교수님 사실 문헌, 장교수님이 보내주신 것도 그렇고 제가 준비한 것도 그렇고 김백선장군 누가 알다싶이 당시 전우였던 맹영재군수와 거병을 하자 해서 맹영재 당시 지평현감이 몸을 도사리니까 화를 내면서 가지고 있던 총을 부수어 버리고 집에 와서 그때 당시 “단발령으로 인해서 머리 깍으러 오는 사람들을 찔러 죽이겠다. 아니면 와서 의병을 해야 되겠다.” 이러고 있던차에 괴은선생이 와서 이 두분이 바로 의기가 투합이 된거지요? 그렇지요? 그것까지 인정하십니까?
고인

참고인

장삼현 예.

김영구의장

그러면 의기투합이라는 말이 글쎄, 뭐 그런식이 되서 “설득하고” 이건 설득 당한거 아닙니까 결국은?
고인

참고인

장삼현 아니지요.

김영구의장

이거 누가 국민학생을 와서 보라고 그래도 그렇고, 대학생을 와서 보라고 그래도 그렇고 이것에 아무 관계없는 사람을 와서 보라고 그래도 누구든지 이건 괴은이 김백선을 설득한거 아닙니까? 안할려고 하는걸 하자, 하자해서 그것뿐이 더 됩니까 지금.
고인

참고인

장삼현 기록은 생각하기에 달려 있는데요. 기록은 괴은이 김백선을 설득한걸로 기록이 대부분이 되고 또는 그냥 가서 얘기한걸로 되고요. 또 그렇지 않은 기록도 있고 여러 기록이 있습니다. 그런데 거기서 어떤걸 중점을 두느냐...

김영구의장

글쎄 아까도 말씀 하셨지만 김백선장군도 분명히 같이 의병을 시작한 분으로 인정을 하시고 또 사실 우리 향토에 세우는 기념비는 적어도 좋은 것은 조금더 좋게 나쁜 것은 좀 빼도 무관 하겠다 이러면은 빼고 이런 것이 기념비 보통 세우는 그런 순이라고 말씀을 들었는데요. 자 보십시오. 삼국지 참 여러 분들이 읽습니다. 그분들이 누가 하자, 하자 해서 한겁니까, 의기투합 한겁니까? 누가 봐도 다 의기투합 했다 그러지요. 똑 같은 마음을 가지고 있었을 때 만난겁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고인

참고인

장삼현 예.

김영구의장

틀린 마음으로 있지 않았다고, 그런데 어떻게 설득이라는 말이 들어 가느냐 이거지요. 설득이라는 것을 찾아 보면은 “잘 구술러서 이해 시킨다”는 얘기인데요 그렇게 김백선장군이 그렇게 구술러서 이해를 해 갖고 총칼을 들고 일어 섣습니까?
고인

참고인

장삼현 기록은 여기저기 차이가 나는데요 괴은이 포수를 먼저 설득 시키고 난 다음에 김백선을 만나서 설득이든지 같이 하자고 그랬던지간에 그런 기록도 있고 먼저 만난 기록도 있고 이런 저런 기록도 있습니다.

김영구의장

물론 그것도 있고, 그게 아닌것도 있고 하니까 그러면 그런 것은 좀 중론을 택해야 되지 않았느냐. 쉬운말로 저희가 보기에는 화서계열쪽에 있는 분이 쓴 문헌은 김백선을 설득한걸로 쓴 것 같고 그게 아닌 객관성을 가지고 쓴 양반은 있는 그대로 쓴 것 같아요. 그러면 장교수님 참 양평 천하가 다 아는 화서계열이신데 그렇다고 그래서 없는 것 쓰신 것은 아니지만 너무 치우치지 않았느냐 이게 중론입니다, 중론. 괴은선생은 누가봐도 김백선을 설득한 대단한 성과를 올린 분이고 더군다나 또 따라서 동참을 했고, 거기다가 지평의 두의사, 양평군의 대표다 그러면 김백선장군은 어디로 갔느냐 이거죠. 어느 누가 이것을 참 아주 공정한 입장에서 썼느냐, 적어도 우리 양평군 군에서 세우는 을미의병 더구나 의병기념비문이 그렇게 객관성이 좀 결여되면 안되지 않느냐, 이 비문을 본 사람은 누구나 말하게 되어 있습니다.
고인

참고인

장삼현 제 생각에는, 제 의견에는요, 아까 김옥균이나 박영효 이를 간적이라고 제가 표현했고 그렇듯이 이게 척사의리에 딱 맞아야 된다는 얘기입니다. 아주 선을 그어가지고요. 그래서 그분이 제가 답변도 그렇게 했습니다마는 배신을 안했으면은 그건 종군하신 분들이 다 기록한 것이니까 안했으면 제가 거기다 마지막으로 3개의 별이다,

김영구의장

선생님! 자꾸 지금 배신 배신 하시는데요, 살아보시지는 않으셨지 않습니까? 김백선장군이 배신을 한건지 이쪽 의암선생님 쪽에서 배신을 한건지 누가 배신한건지는, 그리고 적어도 한국독립운동사 선생님께서도 하셨던 그 사료집에도 참 의암선생이 읍참마속하는 그런 심정으로 참형을 했다는 것도 있고 또 지금 후세에 사료집을 한 사가들 견해는 당시에 적이 앞에 있는데 정말 단 한명의 의병이 필요한데 참 용감무쌍한 장수 결국은 어머니라도 한번 보고서 죽고 싶다는 그런 말을 하는 장수를 굳이 베었어야 됐느냐 이런 것도 지금 나오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것을 굳이 어느 한쪽에 것만 가지고서 모르겠습니다. 다 아시겠지만 기려수필에서는 지금 교수님 말씀처럼 적고 있지는 않습니다. 그분은 또 여기 분도 아니고 보니까 경상도 분이시데요. 그 분이 다니면서 이렇게 독립운동에 관한 것 챙겨서 했는데 그럼 그분들 주장만 또 다 옳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런 저런 것은 좀 규합을 해서 정말 누가 봐도, 여기 선생님 썼습니다. 사심없이 객관적으로 기념비문을 지으셨다고 그랬는데 정말 이것이 과연 이렇게 사심이 없었느냐, 왜 그러면 한쪽 보신 기록만 가지고서 이렇게 쓰셨느냐 이겁니다. 이쪽 기록도 인용을 하셨어야죠.
고인

참고인

장삼현 그 송상도의 기려수필도 제가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게 어떻게 기록이 됐느냐 하면은 종의록에 여러 가지 내용이 나옵니다마는 돌아다니면서 그건 들은 기록이고 직접 종군한 사람이 아니고, 그 다음에 거기도 그럴 것이다 이렇게 했지 꼭 그렇다라고 단정한 기록은 아닙니다. 그리고,

김영구의장

역사는 후세사람들이 평가하는 것 아닙니까?
고인

참고인

장삼현 그런데 경상도하고 여기하고는 학파가 다릅니다. 운광선생 창일록도 경상도 사람이 가져가서 많이 변형이 됐다고 운광선생 후손이나 강상열씨, 제천 도지사 장현강도지사님도 그런 말씀하시더구만요. 송상도나 그 분이 기록한 것은 의암선생님하고 정 반대예요. 좋지 않게 기록을 했는데,

김영구의장

예, 아니 서로 틀리드라고요. 어느 사건에 대해서의 당시의 기록도 틀린게 많은 것은 익히 아실텐데요,
고인

참고인

장삼현 제가 기록을 하면서 그것은 취할 수가 없다는 얘기입니다. 그걸 취하게 되면 의암이 완전히 나쁜 사람이 되니까, 소인이 되니까 그리고 의암선생님 모든 일생을 봐도 아주 칼날같은 분이시기 때문에,

김영구의장

아니 글쎄, 의암선생님이 뭘 잘못하셨다, 잘못된 분이시다 이게 아닙니다. 지금 교수님이 저희한테도 오늘 이렇게 가져와서 하신 것 보면은 여기에 지금 윤병석교수님하고 이렇게 주고 받으신 중간에 쓴 것을 보면요, 이 때 당시로 저를 비롯한 여기 몇위원이 당시에 초선위원으로 의회에 처음 나와서 들었습니다. 뭘 알지는 못해서 참 별로 할 말도 하지는 못했고 그런데 그때 당시로 얘기도 좀 여기는 공람이라고 하셨는데 저도 그냥 공람이라고 표현을 하겠습니다. 교수님은 공모를 해야 공람이지 무슨 공람이냐 하지만 이게 이렇게 지금 좀 문제가 야기되니까 좀 여러분하고 얘기를 하고 또 의회도 한번 보여주고 또 혹시 압니까? 의회가 누굽니까? 나중에 장삼현교수님 임종선씨하고 참 설전 벌이시다 나중에 “임종선씨하고는 얘기하지 않겠다, 8만군민의 의견이라면 대화할 용의가 있다” 이런 말씀도 하셨는데 의회는 양평군의 대표 아닙니까, 어쨌든? 뭐 우리 위원님들이 다 이런데 대해서 지식이 거의 없습니다만 그래도 그 당시에 협의나 어떤 사실 이렇게 썼는데 이게 무슨 문제가 있겠느냐 없겠느냐 이런것도 한번 해 보실만 했었는데 여기 뭐 스스로 말씀하신 것 처럼 그냥 밀고 나가라 뭐 이런식으로 되어서 이게 비문이 섰다면은 문제가 있지 않았나 이거죠.
고인

참고인

장삼현 그 비문은 말이예요, 제가 여기 밝혀놓고 있습니다마는 그 당시엔 전 의회라고 하는 생각도 못했고 또 원장님이 부탁하니까 난 지어줬을 뿐이고 그 다음에 거기에 대해서 문화원에서 채택을 하든지 말든지 저는 말이예요, 꼭 제가 뭐 제 것을 채택해 달라는 얘기도 안하고 신중을 기해서 해 달라고, 저야 무슨 의회가 있는지도 전 생각지도 못했고 거기까지 생각을 못했습니다.

김영구의장

아 예, 사실 그건 장삼현교수님보다는 당시 양혜석원장님께 요청을 했었었는데 받아들이지 않았던 걸로 저도 알고 있습니다. 뭐 여러분이 저희 여기 계신 위원님들보다 더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특히 앞에 계신 장삼현교수님 같은 경우 정말 양평에서는 자타가 공인하는 참 최고의 우리 양평군 향토사료에 대해서는 밝으신 분인데,
고인

참고인

장삼현 아니 별말씀을요.

김영구의장

저희는 여러분들 그러니까 반대하시는 분들 또 이렇게 반론 제기하시는 분 또 주위에서 말씀하시는 분 이런 분들을 통해서 알게 되고 뭐 기존에 이런것에 대한 지식은 사실상 있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중론은 참 중히 여깁니다. 그래서 의회의 원칙도 중론에 의해서 어떤 일이든 하는 것이 원칙이고 또한 이 비문도 저희 생각은 그렇습니다. 중론에 의해서 해야 되는 것이 아니냐, 그래서 중론에 의한 좀 쉬운말로 장교수님 아무리 열심히 이렇게 하셨더라도 양평의 정서에 맞는 또 여기 참 쓰신 것 처럼 이게 뭐 1, 2년 세웠다 없어지는 것도 아니고 후세들이 다 볼건데요, 만약에 후세들이라도 이의 제기를 좀 하지 않는 이런 비문이 됐었으면 하는 생각에서 한번 특위도 열고 모신겁니다. 만약에 의회에서 장교수님한테 이래라 저래라 할 권리는 없습니다. 그러나 저희는 의견을 제시하고자 하는 것인데 만약에 의회의 의견이 제시가 된다면 교수님! 받아들일 용의는 있으십니까?
고인

참고인

장삼현 저는 비문이 수정이 된다면은 그냥 다른 사람한테 비문을 받아서 세우시라는 그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김영구의장

너무 ,물론 불쾌하시겠지만 위원님 여러분들 생각도 만약에 어떤 의견개진이 되어서 비문이 수정된다 손치더라도 이것은 장삼현교수께서 다시 해 주셔야 된다 저희 또 중론입니다. 그런데,
고인

참고인

장삼현 아니 그렇게 될 경우에는 제가 손댈 필요가 없는 것 같습니다. 그 비문 제대로 못 지은 사람이 무슨 비문을 또 짓습니까?

김영구의장

그러면 만약에 다른 의견이 제시가 되어서 또 뭐 어떤 방식이 되어서든 수정이 된다면은 그 비문을 사실 수정을 한다는 것은 결국 다시 새긴다는 말씀인데요, 그렇게 된다손치면은 후에 또 이의를 제기하시지 않으시겠습니까?
고인

참고인

장삼현 아니 그러니까 제가 말씀드렸잖아요. 가령 한 자가 틀렸다 그러면 깎지 않으시겠죠, 그러면? 그렇지요?

김영구의장

예.
고인

참고인

장삼현 한 자가 틀렸으면. 그런데 그런 생각을 가져주시고 저는 비에서 하여튼 비가 글자가 깎여져서 새로 새기게 된다 하면은 저는 거기 손 안 댄다는 얘기죠. 뭐 비문 쓸 필요도 없고.

김영구의장

비문도 재작성도 안하지만 이의도 제기치 않겠다? 아주 관여하지 않겠다 이 말씀이신가요?
고인

참고인

장삼현 예, 예.

김영구의장

참 너무나 애쓰시고 참 보통 사람이면 이렇게 작성도 못할 이런 비문 기껏 정말 아주 온 정신 집착하고 심신 고달파 하시면서 쓰신 이 비문에 대해서 왈가왈부해서 죄송합니다.
고인

참고인

장삼현 아니 아니 아니예요.

김영구의장

그런데 의회는 정말 중론을 중히 여깁니다. 그래서 여론 또 의회의 제시도 있었고 그래서 이렇게 모신겁니다. 위원장님! 저는 이상으로 질의 마치겠습니다.
영호

이영호위원장

더 질의하실 위원님, 예, 박위원님 질의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박선배위원

모처럼 귀한 시간을 내주셔서 고맙습니다. 한가지만 여쭤보겠습니다. 지금 장교수님이 몇페이지입니까? 24페이지. 24페이지에 보면 국사대사전 일중당 해서 26, 28쪽에 김백선이 지평군수 맹영재와 그 부하 관병 400명을 동원 의병을 일으켰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쪽으로 그 밑에까지 보면 거의 김백선장군을 상당히 공적을 인정을 하고 상당한 부분을 참 인정을 한 쪽이란 말이예요, 거의가 다. 그래서 관병도 400명이 아니라 관병 400하고 100명 해서 500명이다. 이런 부분은 김백선장군을 상당히 인정을 한 부분이라고 저는 생각하는데 그렇지요?
고인

참고인

장삼현 그것은 그 당시의 기록이요, 이렇게 각자가 기록이 500명 한 데도 있고 400명 한 데도 있고 지금 어느 기록에는 100명도 나오고 그런데 이것을 400명을 달리 숫자를 할 수 없고 그 당시에, 이제 기록이라고 하는게 그렇습니다. 그 당시에 김백선의 공이 큰 것은 사실입니다. 그래서 초점을 기록을 어디다 맞추느냐 대부분 기록자가 공있는 사람한테다 맞추거든요. 그렇게 됐는데 저는 여기 나오겠습니다만 400명이 다 포수 아니다 그런 입장입니다.

박선배위원

아니 그런데 제가 말씀드리는 것은 400명이나 500명이 중요한게 아니라 여기서 각 사료집에 보면 김백선장군이라는걸 그만큼 인정을 해 줬다는 부분을 교수님이 여기 이 책자에 인정을 한 것이 아니냐, 김백선이라는 장군을. 그런 얘기다 이런 얘기예요. 그렇지요? 그건 어느 사료집이나 김백선이가 무명장정이 아니라 그래도 뜻을 가지고 큰 포부를 가지고 그래도 헌신을 한 사람의 하나라는 걸 인정을 해 준 부분 아니냐 이런 얘기지, 여기에 기록되어 있는게. 어느 사료집이든지. 그렇지요?
고인

참고인

장삼현 예, 예.

박선배위원

그런데 그 밑에 가 보면 비문에서 「괴은이 김백선을 설득하고 고을사람을 의리로 깨우쳐서로」 정리한 것이다. 그러니까 을미의병비문 전체에 김백선이가 차지하고 있는 부분은 아까 서두에서 의장님이 말씀하신대로 김백선을 설득하고 고을사람을 의리로 깨우쳐서로 정리한다 그 부분이 김백선장군의 비문 전체중에 이부분을 차지하고 있는거다 이런 얘기예요. 그렇지요?
고인

참고인

장삼현 예.

박선배위원

교수님이 지금 비문내에 김백선이를 거론한 부분은 이 부분이다.
고인

참고인

장삼현 예.

박선배위원

그런데 아까 의장님이 지적하듯이 위에서 이런 참 상당히 의병에 열의를 가지고 그래도 장수로서 제몫을 했다고 각 사료집에서도 평을 했는데 밑에 겨우 김백선을 칭한 것은 김백선을 설득해서, 그러니까 설득을 당해서 김백선이가 위의 사항의 일을 했다는 얘기로 했으면 우리는 그래도 양평 을미의병기념비가 양평군 땅에 양평 그래도 전체 군민 입장에서 문화원에서 해서 세운 비가 양평의 사람으로서 이 정도하면 좀 너무 미약하지 않느냐, 욕심에는 그래도 양평사람이 의병으로서 그래도 장군노릇을 했는데 좀 조금이라도 저걸 치적을 해서 좀 낫게 해 줬으면 얼마나 좋았겠느냐 이런 아쉬움이 있지 않느냐, 뭐 전국적인 비보다도 양평땅에다 양평문화원에서 시작을 해서 설립하는 비니 이상 또 우리 제 개인 하나의 욕심도 그렇습니다. 양평의 서장을 지냈던 또 군수가 지냈던 국회의원이든 텔레비에 한번 얼굴이 나온다든지 신문에 양평사람이 걸린다면 다른 사람이 나온 것 보다는 상당히 흐뭇한 감정으로 한번 더 여겨보고 텔레비에 보면 그 이튿날 신문에 나면 신문을 한번 더 뒤져보는게 우리 고향 사람들의 심정이다 이 말이예요. 이런 욕심에서 좀 더 저걸 했더라면 김백선이를 설득했다는 것 보다는 조금 치켜세워서 양평사람으로서의 좀 저걸 해 줬으면 하는 욕심이 있다 저는 이렇게 생각을 합니다. 그런데 지금 장교수님께서 아까 하신 말씀은 위정척사라는 테두리를 가지고 하다 보니까 이 김백선이가 하향이 된 것 아니냐, 또 김백선이는 화서문에 화서학파에 들어있는 사람들이고 옛날에 양반계층에 있는 사람도 아니고 막말로 쌍놈계층에 있던 사람이기 때문에 여기서 도외시 당한게 아니냐,
고인

참고인

장삼현 아니예요.

박선배위원

이렇게 생각이 안돼요?
고인

참고인

장삼현 쌍놈은 아니고 평민입니다, 평민.

박선배위원

글쎄, 평민이나 쌍놈이나.
고인

참고인

장삼현 아니 아니죠.

박선배위원

지금 시중에서 얘기하는 것은 그런식으로 지금 해서 이 문제가 더 얘기가 된 것 아니냐. 만약에 김백선장군이 화서학파 계열에 있다면 의당히 여기 기술이, 올라갔을 것 아니냐.
고인

참고인

장삼현 아니죠.

박선배위원

그럼 김백선장군이 화서학파의 계열이라소 해도 여기에 군율을 위반해서 했다만 여기 기재가 안됐다 이런 얘기예요?
고인

참고인

장삼현 기재가 안됐다가 아니라 기재가 됐다는 말씀이죠?

박선배위원

예.
고인

참고인

장삼현 돼야죠.

박선배위원

그러니까 제 생각에는 위정척사라는 테두리안에서 김백선장군이 공훈은 큰데 나중에 좌천을 해서 이 비문에도 이렇게 된 것은 그 위정척사정신에서 이게 이렇게 된 것 아니냐 제 생각에는 이렇게 생각이 되는데요.
고인

참고인

장삼현 위정척사가 바로 항일인데요, 항일이라 하는 이런 대의에 계속 반복해 말씀드립니다마는 그 대의를 중심으로 했기 때문에 아까 말씀하셨는데 자꾸 배신 배신 표현이 제가 잘못됐는지 모릅니다마는 여기 기록에 보면 말이예요, 이게 한두군데가 나오는게 아니라 어느 기록이든지 간에 기록에 보면은 아주 나쁘게 나옵니다. 제가...

김영구의장

아니 아니 압니다. 그 기록에 그걸 못 본 것은 아닙니다. 또한 당시 또 김백선장군의 참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참 어떤 양반층하고의 알력 이런것에 대한 기록도 봤고요, 또 후에 지금 그걸 평가한 기록도 봤는데 굳이 정말 굳이 그렇게 작성이 되어야 됐었느냐 이것이 중론입니다.
고인

참고인

장삼현 솔직히 말씀드리면 사전에 무슨 제가 이렇게 대인관계가 있고 그래서 또 원장님이 말이예요, 대인관계가 있고 원장님이 좀 이렇게 여론을 많이 생각하셨으면 문제가 없었겠죠. 그런데 저는 그냥 위정척사하고 항일 거기에다만 중심을 두다 보니까 거기서 벗어 났기 때문에, 또 당대에 양반 상놈이라고 하는 것을 저는 그걸 믿지 않습니다, 의암선생을 믿기 때문에요. 이민옥이라고 하는 덕수이씨의 그분도 하사의 처 뭐가 되고 괴은의 종숙 아닙니까, 아저씨벌 되는데 그래도 처형을 했습니다. 처형을 할 때 말들이 많았습니다.

김영구의장

아니 그 문제는 이렇게 나중에 평가된걸 보니까요 의암 대장께서 이렇게 반상을 갈른 것이 아니라 진중에서 쉬운말로 누구든 생각하기에 편한게 총칼들고 나가 싸운 사람은 거의 평민입니다, 거의. 의병진중에. 그리고 사실 양반계급에 있는 분들 그때 당시는 아직 그런게 남아 있을 때라서 대장쪽 이렇게 하시고 이러면서 진중에서 정말 양반쪽에서 볼적에는 “아 의병 같이 했다고 맞먹어” 이런식. 이런 것이 진중에서 퍼지면서 당시에 그런 화살이 김백선장군한테도 갖고, 또 다른 장군한테도 갖고 이렇게 됐다는 기록을 봤습니다. 그래서 그런거지 의암선생께서 반상을 구별했다 이런 말씀은 아니지요. 그리고 지금 말씀중에 사실 저희 의회는 기침소리 하나까지도 다 녹취가 됩니다, 지금. 장교수님 말씀도 지금 하시는 말씀중에 당시 원장님께서 폭넓게 의견수렴도 하셨으면 잘 됐을 텐데 이런 말씀은 무슨 뜻인지 저희가 알아서 받아 드리겠습니다. 그런데 다시한번 부탁 드리지만 만약에 어떤 제시가 되서 그 제시가 받아 들여질런지, 안 받아 들여질런지도 저희 의회는 받아 들여라 하는 권리는 없습니다. 그러나 또한 중론으로 인해서 그렇게 된다면은 어차피 지금 장교수님이 쓰셨던 비문 고쳐도 장교수님이 고쳐야 되지 않느냐 이렇게 생각이 듭니다. 다시한번 심혈을 기울이셔서 하실 의도를 한번 아까 물어 본거구요. 뭐 이걸 의회에서 제시 했다고 해서 꼭 해라 하는 강권력은 없습니다.
고인

참고인

장삼현 저는 생각을 아까 말씀대로 그렇고 비문이 수정될 경우 저는 손댈 필요가 없고 다른 훌륭한 분한테 받아서 세우면 되는 것이고요, 다만 옛날부터 선례가 있는게 추기라고 하는게 있습니다, 추기.

김영구의장

추가해서 기재한다.
고인

참고인

장삼현 여백이 있는데요 그 여백에다 추가해서 다른 기록을 다른 분이 쓰셔서 기록하는건 저도...

김영구의장

방법론으로는 그 방법이 좋을 것 같다 제시를 하시는거지요.
고인

참고인

장삼현 예, 그것은 저도 이의 없겠습니다. 제가 고충이 뭐냐 하면은 그 비를 쓸 때 아주 여백도 없는 겁니다. 한자라도 빼고 넣을 수가 없는 이렇게 계산해서 했는데 이상스럽게 컴퓨터로 쳐서 하다 보니까 세줄이 남았어요. 그래 아쉽게 여기는건 그렇게 될 것 같으면은 할말이 많은데 거기에 쓸게 굉장히 많습니다. 그걸 못 써 가지고 비 세워진 다음에 그렇게 됐는데요 사실은 여러 가지 뭐한 점은 있어요. 제가 말씀 드리지 않겠습니다. 그러나 비문에 대해서는 지금 이 비문에 대해서만 가지고 얘기하고 다른 비는 얘기할 필요도 없고 모순된 점은 얘기하지 않겠습니다.

김영구의장

무슨 말씀을 하고 싶어 하시는데 조금 감이 잡히는데요, 우선 반론을 제기했던 분들이 당시 원장이름을 왜 거기다 거명 했느냐 이런 것은 저희 의회에서는 별로 말씀 드릴게 없구요.
고인

참고인

장삼현 제가 생각을 참 이런 저런 생각을 많이 했고 내가 여기를 나와야 되나 말아야 되나 이런 생각도 했고 이게 도대체 내가 돈 받고 한 것도 아니고 그런데 이렇게 고향사람들한테, 뭐 여러분은 아닙니다마는 몇 사람한테 정말 신상모독도 당하고 그러나 무슨 돈을 많이 들여 가지고 신문에다가 어떻게 할 수도 없고 그래서 제가 이걸 지금 아무튼 300페이지가 되겠습니다. 300페이지를 아무튼 되는 비가 쓰러져도 그만이고 나중에 혹시 누가 이래라 저래라 하더라도 내 사상을 여기 밝혀 놓으니까 책을 만들어 놓겠다. 어디다 반론 할 수도 없고 신문공고를 낼 수도 없고 말이예요. 아주 허황되게 점잖하게 그저 얘기하지 말고, 정말 착찹합니다 마음이. 그리고 이건 말이예요, 제가 그쪽측에 대해서 반론을 만들어서 나름대로 남길려고 한 것을 지금 다시 여기 위원님들께 제출할려고 다시 작성할 시간이 없습니다. 그래서 여러 가지 문투라든지 오자, 탈자 이런게 많습니다. 그건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아까 말씀 드려야 되는데 제가 말주변이 없습니다.
영호

이영호위원장

자, 더 질의하실 위원님 안 계시지요?

고기섭위원

됐습니다.
영호

이영호위원장

대단히 고맙습니다. 아주 성심성의껏 답변해 주신데 대해서 진심으로 감사를 드리고요, 이렇게 참석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이상으로 을미의병기념비 및 김찬제유허비에 대한 제3차 위원회 참고인 진술을 모두 마치겠습니다. 특별위원회 위원여러분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이상으로 을미의병기념비및김찬제유허비진상조사특별위원회 제3차 위원회 산회를 선포합니다.

12시05분 산회

출처 경기 양평군의회 회의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