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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특별자치도의회 구정질문

박재완 의원 구정질문

337회 제3본회의2016-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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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경하는 도민 여러분! 황현 의장님과 선배·동료의원 여러분! 송하진 지사님과 김승환 교육감님을 비롯한 관계공무원 여러분!

국민의당 소속 문화건설안전위원회 완주군 제2선거구 박재완 의원입니다. 지금부터 424년 전은 바로 임진년 1592년입니다. 잘 아시다시피 그 해는 태조가 조선을 건국한 지 200년이 되는 해이자 한반도의 평화가 무참히 깨지기 시작한 임진왜란이 발발한 해입니다.

그 시작은 1592년 음력 4월 13일 일본군은 병력 1만8,700여명, 병선 700여척을 이끌고 부산 영도에 상륙하면서 비롯됩니다. 부산진은 불과 4시간 만에 함락되고 이로 인해 조선군 3천여명이 전사하거나 학살됩니다. 왜군은 날이 갈수록 후속군을 보충하여 병력을 강화하고 곧바로 세 갈래로 한양을 향해 진격, 단 20일도 되지 않아 경상도와 충청도를 점령하고 한양까지 점령하게 됩니다.

그때 이미 선조가 백성을 뒤로 한 채 한양을 떠나 피난길에 오른 뒤였습니다. 결국 선조는 더 이상 갈 곳이 없어 명나라에 망명을 요청하였으나 거부당하는 갈 곳 없는 신세가 되고 맙니다. 왜군의 일부는 선조를 쫓아 평양성으로 북진하였고 또 다른 왜군의 일부는 다시 남진하여 곡창지대이자 의병이 가장 활발하게 활동했던 전라도를 점령하기 위해 전주성으로 향합니다.

이는 왜군이 자신들의 군량미와 군수품을 확보하기 위함이요, 동시에 당시 유일하게 전라도만 장악하지 못했던 상황이었기 때문에 전라도 점령이야말로 한반도 점령을 의미한다고 보고 전라도를 타깃으로 삼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전주의 길목에서 치러진 웅치·이치전투로 말미암아 왜군은 전라도 정복에 실패하게 됩니다. 화면을 봐주시기 바랍니다. (화면을 보이며) 1차 임진왜란 당시 왜군의 침공 루트입니다.

이후 전라도를 점령하지 못한 채 장기적으로 군대를 유지하기 힘들었던 일본군은 명나라의 협공으로 말미암아 퇴각하게 됩니다. 그렇게 임진왜란이 2년 만에 종결되는 듯했으나 임진왜란 시작 5년 만인 1597년 정유년에 다시 침략하여 1599년까지 전쟁을 치르게 됩니다. 이렇게 총 7년간의 전쟁이 임진왜란입니다.

다음은 임진왜란 중에 우리 지역에서 발생한 전투 중 이치·웅치전투에 대해서 간략하게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한양 점령 이후 왜군 6부대 소조천윤경(소조천륭경, 고바야카와 다카카게)이 이끄는 왜군은 1592년 음력 6월 23일 전라도 금산을 점령하고 진지를 구축하고 전라도 점령을 위해 전주성으로 향합니다. 금산에서 전주로 들어가려면 진안과 완주 사이에 놓여 있는 웅치를 넘어가거나 또 다른 길로 이치를 넘어야 합니다.

화면을 봐주시기 바랍니다. (화면을 보이며) 금산에서 용담, 진안을 거쳐 웅치를 거쳐 전주성을 공격하는 코스가 74㎞입니다. 금산에서 진산을 거쳐 이치, 고산, 안덕원으로 진출하는 코스가 64㎞입니다. 10㎞ 긴 용담, 진안 거쳐 웅치를 향하는 쪽으로 먼저 1차 공격을 하게 되는데요, 왜 그러냐면 웅치에 한 곳만 넘으면 바로 전주성을 공략할 수 있다고 전주성까지는 내리막길이기 때문에 일본군이 생각하기에 훨씬 수월했다고 보고 이치 코스로 넘어오게 되면 탄현과 용계재를 다시 넘어야 되는 어려운 점이 있고 판단해서 1차로 웅치전을 먼저 선택하게 됩니다. 1592년 음력 7월 7일 조선군은 광주목사 권율의 지휘하에 관군 1,500명과 1천여명 이상의 의병이 이치를 지키고, 김제군수 정담의 지휘하에 관군과 의병 1천여명이 웅치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웅치에서는 총 3개의 방어선을 구축하고 의병도 다수 가담하는 등 전주성으로 가는 왜군의 길목을 막아내기 위해 삼일 밤낮을 처절하게 전투를 벌였지만 결국 웅치 방어선은 무너지고 맙니다. 기록에 따르면 전투 후에 웅치의 긴 고갯길은 조선군의 시체로 덮였다고 합니다. 추정컨대 관군, 의병, 양민 등 약 2천여명 이상이 희생되었을 것으로 판단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웅치전투에서 왜군의 희생도 엄청나서 안덕원전투에서는 전투를 제대로 치르지도 못하고 퇴각하는 결정을 내게 하는 결정적인 원인을 제공하는 게 웅치전투입니다. 여기에서 주목할 만한 일화가 있습니다. 웅치전투에서 막대한 피해를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웅치전에서 전사한 조선군의 시체를 모아 돌무덤을 만들어 주고 ‘조 조선국 충간의담(조 조선국 충간의담)’이라는 목비를 왜군이 세워줬다는 겁니다.

이 뜻은 ‘조선의 충성스럽고 의로운 군사에게 조의를 표한다’ 이런 내용입니다. ‘정말 왜군도 처절한 전투에서 감복했다, 조선군이 정말 열심히 싸운 거에 대해서’ 이렇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그러면 지사님께 질문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지사님 나와 주시기 바랍니다. 지사님, 지사님께서는 ‘임진왜란’ 하면 어떤 분이 가장 먼저 떠오르시는가요?

출처 전북특별자치도의회 회의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