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광역시의회 구정질문
고존수 의원 구정질문
존경하고 사랑하는 인천시민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남동구 제2선거구 구월1동, 구월4동, 남촌도림동의 지역구를 둔 건설교통위원회 소속 고존수 의원입니다.
먼저 시정질문 기회를 주신 존경하는 백종빈 부의장님을 비롯한 동료 의원님 여러분께 감사드리며 박남춘 시장님과 공직자 여러분 그리고 시정에 애정을 갖고 방송을 통해 시청하고 계시는 인천시민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본 의원은 시정질문으로 인천시 원도심ㆍ구도심 개발 및 추진방향에 대하여 시민들의 의견을 반영하여 질의코자 합니다. 질의에 앞서 인천의 도시계획 및 발전상황의 발자취를 근대부터 현재까지 언급하고자 합니다.
내 고장 인천은 삼국시대 비류 백제의 도읍지였던 우리나라 근대사 개항장과 맥을 같이하기도 하는데요. 현재 인천은 종합도시 3위라는 명성에 맞게 바다와 하늘, 섬과 육지, 농촌과 도시, 항만과 공항, 갯벌의 자연적 요소와 개발의 인공적 요소가 어우러져 있습니다. 1937년 일제강점기에 근대적 의미에서 인천도시계획이 최초로 수립되고 당시 인구 20만명을 수용하기 위해 가로망과 도시시설, 구획정리사업지구, 용도지역을 처음으로 지정합니다.
이후 한반도 병참기지화를 위한 일환으로 경인시가지 계획을 발표하는데 이때 인천시가지 계획구역에 부내면 전역, 지금 현재는 부평 일대를 말씀드립니다. 문학, 서곶면 일부를 편입하고 개항장과 인천부 지역을 의미하던 인천이 부평과 합쳐져 현재의 인천이라는 도시구역을 결정하였습니다. 광복 이후 1949년 8월에 경기도 인천시로 개칭되고 약 29만명이었던 인구는 1961년 약 40만명을 넘어서며 1960년대 경제개발계획 추진, 공업화, 수출지향적 정책으로 부평ㆍ주안수출산업단지가 조성되었고 경인고속도로 개통으로 인천은 공업도시로 발전하게 됩니다. 1966년에 서울ㆍ부산ㆍ대구에 이어 인구 50만명의 도시로 성장하면서 인구증가에 따라서 주안ㆍ부평지구에 토지구획정리사업이 활발히 시행되었고 1977년 경인선의 전철화와 함께 1970년대 말 약 65만명의 도시로 성장합니다. 1981년 7월에 인천직할시로 승격하면서 1980년대 말 인구는 100만명을 돌파합니다. 1991년 두 번째 도시기본계획 수립으로 옹진군 영종면ㆍ용유면과 김포군 계양면이 편입되고 대규모 해안매립으로 행정구역 확장과 함께 송도신도시ㆍ영종신공항국제공항ㆍ인천지하철 건설계획을 반영하여 수립합니다. 1992년에는 인구 200만명에 도달, 1995년 1월에 직할시에서 광역시로 명칭이 변경됩니다.
이때 인천 북구는 현재의 부평구와 계양구, 남구는 미추홀구와 연수구로 분구되었으며 이에 앞서 1988년 남동구와 서구는 각각 남구와 북구에서 분구되었습니다. 현재 인구 300만인 인천은 동북아경제의 중심도시로서 자리매김하며 송도ㆍ청라ㆍ영종경제자유구역 등 국제도시의 면모를 갖추고 있습니다. 이제 본 질의로 들어가겠습니다.
시장님 답변석으로 나와주시기 바랍니다. 이것 질문이라고 하기에는 좀 그런데요, 우리 시장님.